‘Kimgajoong,s own personality 彩繪表演’2.

입력 2026년04월25일 11시21분 김가중 조회수 419

김가중 도슨트 皇山之藝術Nude

김가중식 페인팅 퍼포먼스에 대한 논쟁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너무 오래되어 닳았고, 너무 많이 사용되어 공허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가장 유효하다. 왜냐하면 김가중의 작업은 그 질문을 다시 불편하게 되살려 놓기 때문이다.

그는 말한다. “무조건 예술이다. ? 내가 그렇다고 하니까.”

이 선언은 무지의 표식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본질을 향한 난폭한 지름길이다. 예술이란 제도적 승인인가, 아니면 선언적 행위인가. 미술관이 인정해야 예술인가, 아니면 창작자가 규정하는 순간 이미 예술인가. 김가중은 이 질문을 피해가지 않는다. 오히려 대답을 미리 던져버린다. “나는 예술이다.” 그 순간, 관객은 판단을 강요받는다. 동의할 것인가, 아니면 부정할 것인가.

문제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맥락이다. 이 사회는 예술과 비예술 사이의 경계가 유난히 도덕적이다. 예술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그것은 곧바로 외설, 일탈, 혹은 사회적 문제로 낙인찍힌다. 그래서 김가중의 작업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예술로 인정받거나, 아니면 존재 자체가 모호해지는 것. 이 극단적 이분법이야말로 그의 작업을 더욱 집요하게 예술이라는 이름에 매달리게 만든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비가 등장한다. “나는 나를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쿠사마 야요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에게 예술은 정체성이 아니라 생존 방식이다. 강박과 환각을 견디기 위한 하나의 통로. 그런데 역설적으로, 바로 그 태도가 그녀를 세계적인 예술가로 만든다. 특히 한국 사회는 그녀의 작품을 무려 150억에 사고 있다. 예술의 값이다, 그녀는 예술이 아니라는데....

 

반면 김가중은 스스로를 예술이라 규정한다. 한쪽은 부정으로 도달하고, 다른 한쪽은 선언으로 돌파한다. 방향은 다르지만 둘 다 결국 같은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예술과 외설 사이의 줄타기라는 흔한 표현을 다시 보게 된다.

이 문장은 설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회피다. 외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다. 사회가 불편해하는 방식으로 몸을 드러내면 외설이 되고, 익숙한 방식으로 포장하면 예술이 된다. 결국 기준은 작품이 아니라 관객의 습관이다.

 

비슷한 논쟁은 보도사진에서도 반복된다. 세계적인 유명잡지의 표지를 장식하여 세계적인 보도사진가로 명성을 얻은 스티브 맥커리의 아프간 소녀는 한 장의 이미지가 어떻게 신화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동시에 포토샵 논란은 우리에게 묻는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보도사진이라면 가필은 금기다. 그러나 예술이라면 해석과 강조는 본질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둘을 지나치게 단어로 구분하려 한다는 데 있다.

 

그 작가는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보도 사진가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조차 완전히 순수한 순간을 찍었다는 신화를 다른 각도에서 보았다. 결정적 순간이라는 개념은 아름답지만, 인간의 행위가 개입되지 않은 이미지는 존재하기 어렵다. 프레이밍 자체가 이미 선택이며, 선택은 곧 연출의 시작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자작가라는 단어에 집착하며, 마치 하나는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왜곡인 것처럼 나누려 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단순하다. 어떤 기자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더 잘 전달하기 위해 구도를 잡고, 빛을 읽고, 순간을 선택한다. 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좋은 사진가다. 만약 그것이 문제라면, 차라리 선언해야 한다. 기자의 카메라에는 광각도, 망원도 허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오로지 인간의 식각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표준렌즈(50미리) 렌즈만 허용해야 된다고... 그러나 그런 주장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객관성은 환상이라는 것을.

결국 김가중의 문제는 작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술을 다루는 방식의 문제다. 우리는 여전히 예술을 안전한 틀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이름을 붙이고, 경계를 긋고, 판단을 미리 끝내버린다. 그러나 예술은 그 틀을 비웃으며 등장한다. 때로는 뻔뻔하게, 때로는 불편하게.

그래서 그의 선언은 다시 들린다.

무조건 예술이다.”

이 말이 오만하게 들린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아직 예술을 허락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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