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gajoong,s own personality 彩繪表演 1

입력 2026년04월25일 11시05분 김가중 조회수 250

.김가중 도슨트 皇山之藝術Nude

遺棄은 황산에서 그 작가의 뒤를 미행하며 예술에 대한 방점을 찍었다. 특히 그 작가의 예술이 그의 직관을 관통하여 어떤 관점 위에 세워진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金嘉中 式 彩繪表演 Painting Performance’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히 특정하기는 어렵다. 주병진 쇼와 김가중의 누드촬영교실이란 기록이 나도는데 이때의 비디오 영상물에 파격적인 페인팅 퍼포먼스가 수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 오래전에 시작되었음을 알 것 같다. 다만 기록과 흔적을 더듬어보면, 그것은 어떤 거창한 선언이나 이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사소하고 인간적인 지점귀찮음, 싫증, 그리고 충동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출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업의 가장 큰 약점이자 동시에 가장 솔직한 미덕이 된다.

 

전통적인 바디페인팅이 신체를 캔버스로 삼아 정교한 이미지와 패턴을 구축하는 예술이라면, 김가중식 페인팅은 그 질서를 노골적으로 거부한다. 여기에는 선도, 구도도, 완성에 대한 집착도 없다. 대신 작가는 붓을 내려놓고, 물감을 쏟아붓는다. 그 행위는 그리기라기보다 방출에 가깝고, 창작이라기보다 배설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업은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과연 어디까지 의도되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자연스럽게 우연의 문제로 이어진다. 현대 미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연을 창작의 한 요소로 끌어들여 왔다. 잭슨 폴록의 드리핑 기법은 흔히 무작위의 상징처럼 소비되지만, 실제로 그의 작업은 치밀한 신체 감각과 공간 인식 위에서 이루어진 통제된 행위였다. 다시 말해, 우연은 그에게 도구였지 목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김가중식 페인팅은 어떠한가. 이 작업에서 우연은 도구의 자리를 넘어선다. 그것은 거의 전부에 가깝다. 물감이 흘러내리는 경로, 신체 위에서 만들어지는 얼룩과 덩어리,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이미지이 모든 것은 작가의 손을 떠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불편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것은 과연 해방인가?, 아니면 포기인가?.

 

흥미로운 점은, 이 작업이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정면으로 끌어안는다. “그리기 귀찮아서, 아니 그릴만한 재능이 없어서 시작했다.” 는 고백은 변명이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그것은 기술과 완성도를 중심으로 한 기존 미술의 위계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며, 동시에 자기 한계에 대한 노골적인 인정이다. 이처럼 김가중식 페인팅은 고도의 기술 대신 낮은 충동을, 치밀한 계획 대신 즉각적인 행위를 선택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대가가 따른다. 우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예술은 반복에 취약하다. 처음에는 신선했던 무질서가, 몇 번의 반복을 거치면 쉽게 익숙해지고, 결국은 피로로 전환된다. 형식의 축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작품은 서로를 대체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 기억에 남지 않는다.

 

또한 책임의 문제 역시 피할 수 없다. 예술에서 예측할 수 없음은 종종 매력적인 미덕으로 포장되지만, 그것이 작가의 선택을 완전히 지워버릴 때, 작품은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를 잃는다. “신도 모른다는 표현은 강렬하지만, 동시에 모든 결과로부터 물러나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 순간, 작품은 자유로워지는 대신 공허해질 위험에 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가중식 페인팅을 단순한 무책임이나 게으름으로 환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이 작업의 본질은 결과물이 아니라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물감을 쏟아붓는 순간, 신체는 더 이상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사건의 장이 된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이미지의 생성이 아니라 직관의 폭발이다. 이 점에서 김가중식 페인팅은 사진이라기보다 퍼포먼스에 가깝고, 시각적 결과물이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소모되는 행위의 기록에 가깝다.

 

결국 이 작업이 서 있는 지점은 명확하다. 그것은 통제와 방임, 의도와 우연, 책임과 해방 사이의 경계다. 그리고 지금의 김가중식 페인팅은 그 경계 위에서 아직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상태로 머물러 있다.

 

어쩌면 다음 단계는 단순할지도 모른다. 완전한 통제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다만, 전적인 방임에서 단 한 걸음만 물러서면 된다. 무작위 위에 단 하나의 선택, 단 하나의 개입을 얹는 순간, 이 작업은 더 이상 충동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다.

 

파괴는 시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위에 책임이 더해져야 한다.

‘Kimgajoong,s own personality 彩繪表演 2.’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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