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긴 인터뷰였으면서도 그토록 재미었었던 인터뷰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김수혁 비쥬얼 아트센터 보다 대표 이야기다.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독특한 예술가다. 우선 엄청난 달변에 지식의 달인이다. 외모에서부터 풍기는 예술적 풍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종횡무진 장르불문 자유분방 어디에다 기준을 두어야 될지 모르겠다. 사진가인가 하면 음악가이고 예술인인가 하면 광적인 오토바이 마니아다. 아무것도 든 게 없는 허풍선인가 했더니 웬걸 심지가 굳기로는 바위보다 무겁고 강철보다 강하다.
비주얼아트센터 보다를 차려놓고 5년 동안이나 생고생하면서도 포기란 걸 모르고 줄기차게 밀어부치고 있다. 6살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으면서도(사실 삼촌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면 그것을 타고 싶어 몰래 하염없이 오토바이 위에 앉아 있곤 했다) 정작 오타바이를 타고 달려보기까지에는 무려 40년도 더 되는 장구한 세월을 기다려야 되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들이 허락을 안 해서였고 커서는 아내와 아들이 허락을 안 해서 오토바이를 흠모만 해오다 몇 년 전에야 오토바이를 구입하여 타고 있단다. 아니 달리고 있단다.
오토바이 에피소드도 대박이다. 대학에 강의를 나갔는데 지각인데 하필이면 비까지 쏟아진다. 오토바이를 팽개치듯 세워두고 물에 빠진 생쥐꼴로 후다닥 뛰어들자 경비원
“어이, 어디가는거야 그 꼴로”
“배달이요”
“어어 이봐이봐, 거기 서 젠장, 요즈음 배달꾼은 할리데이비슨을 타나?”
그는 천성이 낙천적이고 기타치고 노래하길 즐긴다. 여전히 그의 꿈은 무대에 서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님이 교수인 교육자 집안이다보니 그가 자랄 때만 해도 교육자 집안에서 밤업소에서 기타치고 노래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을 터였다. 때마침 사진과가 국내 최초로 중앙대에 개설되자 부모님의 성화에 사진과에 입학을 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운명이 되고 말았다. 미국에 유학을 가서 엔젤 아담스의 영향과 수업을 받으면서 사진과 음악이 상통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곡은 촬영, 악보는 필름, 인화는 연주라는 개념을 설정하였다. 그의 스승이기도 한 엔젤 아담스는 인화작업에 큰 비중을 두는 작가다. 아담스가 펴낸 이론서 Zone system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명저다. ‘결과를 예측하라’는 아담스의 이론을 집대성한 책으로 최종적인 인화를 통하여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다양한 변수를 과학적으로 풀이한 책이다. 당연히 현상과 인화를 해 보지 않은 초심자들에게 매우 어려운 이론서이기도 하다. 그런 존 시스템을 정통으로 공부한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놀랜 것은 한국의 작가들이 인화를 하면서 가이드 프린트라는 개념은커녕 인화를 한 현상소 기사의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프린트를 8X10으로 인화를 하여 각 부위별로 색상과 농도를 일일이 체크하여 기사가 그 데이터에 의거하여 작가의 작품을 인화하여 주는 철저한 주문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의 인화를 맡은 기사는 8년 동안이나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그 기사가 누군지 관심을 갖기는커녕 사진의 문외한인 아르바이트생이 인화를 하여 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였으니 그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한국의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어떤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분신이라고 하는 작품에 대한 일말의 애정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의심이 되었다. 이래선 작품이 작품으로서의 가치는커녕 사진을 하는 의미조차 있을 수 없다는 일념 하에 설립한 것이 프린트 보다였다. 2006년 3월의 일이다.
프린트에 대한 그의 생각이 더욱 안착되기 위해선 사진 전반에 걸쳐 일관성 있는 일괄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역삼동 현 사옥으로 이전을 하고, 작품 전시장, 예술가 인큐베이팅 시스템, 아카데미/세미나, 대형 암실, 디지털 프린트 시스템, 출판, 기획, 스튜디오가 한 묶음으로 된 비주얼 아트센타로 확장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한국적인 문화 풍토에서 보다는 굉장히 버겁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고 퍼블리싱 보다에서 출판한 서적이 아마존에 출납되는 등 서서히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는 차츰 보다의 명성과 정성이 널리 알려지면서 사회적인 인식에 변화가 일고 있어 미래가 밝다고 보고 있다.
사업가로서의 김수혁과 예술가로의 김수혁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가 설립한 보다엔 예술가로의 안목과 미래에 대한 식견이 예리하게 번뜩이는 것이 보인다. 얼핏 본다면 기타치고 노래하고 오토바이타는 낙천적인 면만 보이겠지만 예술에 대한 집념과 끼가 넘치고 집념이 서서히 사진의 나아갈 바를 올바르게 인도하여 가고 있음을 간파하게 된다.
현재 비주얼 아트센터 보다는 역삼역근처에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그 문은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 있으므로 제대로 된 작품을 프린트하기 위해서든 작가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든 책을 내든 전시를 하던 사진을 올바르게 알기 위해선 그 문을 두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두드려라 그리하면 열릴지니라.
글 : 김가중 기자
사진 : 김법연 기자
동영상 취재 : 동아일보 유뮨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