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중의 이화동 이야기, 한국사진방송 번개출사 후기2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쭉 걸어가면 한국사진방송 사무실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큰길을 벗어나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동숭동이다. 숭늉에 밥풀이라도 동동 떠다닐 것 같은 이름은 그렇다치더라도 가끔씩은 처녀가 핸드백을 휘두르며 머스마 사냥을 하던 이색거리다.
언젠가 이 거리를 어벙한 청년이 마구 달렸다. 그 뒤를 새빨간 빼닥구두를 신은 처녀가 핸드백을 마구 휘두르며 따라 달렸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어벙이가 주저앉으며 파리마냥 손을 싹싹 비빈다.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다신 그런 짓 안할게요.”
“안 돼! 너 같은 놈은 콩밥 맛을 좀 봐야 돼!” 처녀가 핸드백으로 어벙이의 머리통을 퍽퍽 내리 찍는다. 이때 준수하게 생긴 또 다른 청년이 달려왔다. 청년이 처녀를 잡아끌며 애원을 한다.
“됐어. 이제 그만하면 됐어, 그만하고 가자~”
“안 돼? 이놈이 나 어디를 만진지 알어? 아 나 차마 내입으론 말 못해, 야 이 새꺄 네가 말해봐 너 나 어딜 만져.. 이걸 그냥 콱! 이런 놈은 경찰서로 끌고 가 혼찌검을 내야 돼.” 골목에서 목격된 이 법석은 아마도 지하철에서 어벙한 청년이 처녀의 치마 밑에 손을 넣었던 모양이다.
마치 이상의 오감도가 연생되는 기괴한 장면이다. ㅎㅎㅎ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이상의 오감도 도 이 근처 어디메 쯤 있었다.
아무튼 그 거리를 지나 뒷골목을 휘적휘적 걷다보면 이회장이 나오고 이회장의 대문을 두드리니 경비원이 나와 2016년까지 공사를 하니 내방을 허락할 수 없단다.
“기잔데 잠시만 들러보고 갑시다.” 궁색한 핑계였지만 완강하게 손 사례를 쳐 포기하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이화동’ 이름이 참 좋다. 아마도 옛날엔 배꽃이 새하얗게 나비처럼 날아다니지 않았을까? 어쩌면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저택인 이화장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요즈음은 ‘벽화마을’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런데 사실 벽화다운 벽화는 없다. 차라리 그 벽화마을을 지나 동대문 이화병원 충신동 쪽으로 더 가면 좁디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마을이 나온다.
경사가 심한 산자락을 끼고 사람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은 골목들은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뚫려 있어 마치 개미굴을 연상시킨다. 참 이색적인 동네라는 생각이 든다. 집집마다 방마다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휴일임에도 낭자하여 이른바 봉제공장거리인 것 같다. 이른 아침 방문하면 아마도 커다란 보따리를 어깨에 메거나 지게로 져다가 인근 동대문 의류상가로 옮기는 모습을 자주 볼 것 같다. 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나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 진다. 서울성곽의 아랫마을인 충신동에도 참 많은 이야기가 있을 듯싶다. 사진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음엔 가파른 성곽길을 따라 낙산공원에서 시원한 갈바람을 맞으며 연인들의 달콤한 키스를 훔치다가 토굴 같은 골목에 줄서서 기다려야 맛 볼 수 있는 유명한 할매 네 냉면 맛을 보는 것도 괜찮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