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빌어먹을 몽골 들판 한복판, 영하 30도의 미친 바람 속에서 버스가 눈구덩이에 딜도로 박히듯 깊숙이 처박혔다. 여기서 못 나가면 끝장이다. 겁을 처먹은 나는 야전삽을 들고 버스 밑구멍에 대가리를 박은 채 눈을 미친 듯이 긁어냈다. 하지만 긁으면 긁을수록 버스는 지구 중심점을 향해 늪처럼 꺼져 들어갔다. 이쯤 되면 인간의 노동이란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상황이 나빠진다.
나는 이것을 예술의 제1법칙, 일명 ‘김가중식 똥탕론’이라 부르기로 했다. 사진도 그렇다. 조명 세팅하고 각도 재며 열심히 찍으면 찍을수록 사진은 썩은 동태눈깔처럼 망한다. 그러다가 바지춤이 흘러내려 엉덩이 골이 훤히 드러난 순간이나, 삼각대가 자빠져 얼뚝배기로 찍힌 엑스레이 같은 망한 사진에서 뜬금없이 '우주적 허무'를 발견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그것을 역대급 걸작이라고 부른다. 사진가란 참으로 당당한 고등사기꾼이다. 실패와 무식을 예술이라는 보자기 하나로 완벽하게 싼마이 포장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버스는 사진보다 더 심각했다. 정말 못 나가면 며칠이고 이 동토의 왕국에 뼈를 묻어야 한다. 전화는 불통, 사방천지엔 사람 새끼 하나 없이 오직 눈깔을 뒤집은 백색의 악마들뿐이다. 도로? 서울이 차라리 엎어지면 코 닿을 데인 것 같다. 해가 지면 기온은 미친 듯이 떨어진다. 히터를 틀다가 기름이 떨어지면 타이어를 태우고, 타이어가 없어지면 가죽 잠바와 의자를 태우고, 의자마저 잿더미가 되면 300mm 망원렌즈와 카메라 가방을 태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울 것은?
바로 핏기 빠진 생인간의 몸뚱이, '생몸 누드'다!
나는 그 순간 소름 돋는 깨달음을 얻었다. 문명이란 결국 태울 물건이 남아 있는 동안만 유지되는 위선이다. 자동차가 문명이고, 히터가 문명이고, 샤넬 가방이 문명이지, 마지막에는 인간의 원초적 알몸이 문명의 마지막 땔감이 된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죽음이다. 참으로 공평하고 환장할 노릇 아닌가. 돈 많은 놈도 죽고, 셔터 잘 누르는 미친 사진가도 죽고, 아리따운 처녀도 죽는다. 몽골의 마지막 황후든 고려에서 끌려온 기황후든 결국 똥싸다 죽든 얼어 죽든 다 죽었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거들먹거림이 훌렁 벗겨진 알몸, 즉 '완벽한 누드'로 평등해진다. 이것이야말로 김가중식 ‘구멍 예술’이자 처절한 생존의 잔혹 누드 판타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버스 안에서 쿵쾅거리는 천지진동의 미친 비트와 함께 언년이들의 아흣거리는 신음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 싸! 가라사대~ 내 나이가 어때서!"
밖에서는 저승사자가 낫을 쓱쓱 갈며 내 목아지를 째려보고 있는데, 버스 안에서는 미친 아가씨들과 스태프놈들이 광란의 나체 노래자랑 페스타를 벌이고 있었다. 날씨가 하도 미쳐 돌아가니 체온을 유지하겠다며 털옷이고 속옷이고 훌렁훌렁 벗어 던진 채, 젖가슴과 엉덩이를 덜렁거리며 춤을 추고 있는 게 아닌가!
"이 인간들이 미쳤나? 지금 뼛속까지 얼어 죽어 시체 누드 모델이 되게 생겼는데 누드 뽕짝 춤판이야?!"
나만 밖에서 대가리를 구멍에 처박고 죽을상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버스 안의 미친 스태프들과 알몸의 아가씨들은 오히려 신명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몽골 하늘의 구름을 뚫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면 엉덩이를 두드리는 박수가 터지고, 박수가 끝나면 또 다른 헐벗은 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누가 보면 눈구덩이에 빠져 동사 직전인 게 아니라, 몽골 초원 한복판에 차려진 세계 최초의 '영하 30도 스트립 노래방'에 온 줄 알겠다.
나는 버스 밑에서 눈을 파다가 문득 인간이라는 동물의 무시무시한 황당함에 소름이 돋았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훌렁 벗고 노래를 부른다. 춥고 배고픈데 배꼽을 잡고 웃는다. 길은 막혔는데 불타는 젖가슴을 흔들며 춤을 춘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미친 능력이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옷을 벗어 던지고 흥을 잃지 않는 발악! 어쩌면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진짜 이유도 이론이나 철학이 아니라 이 '미친 흥분' 때문인지 모른다. 맹수가 나타나면 벗고 도망가고, 먹을 것이 없으면 춤추며 사냥하고, 눈구덩이에 빠지면 옷을 벗어 던지고 노래를 부른다. 참으로 훌륭하고도 황당무계한 생존 전략이다.
그때 더 기막힌 엑소시즘이 벌어졌다. 한국의 뽕짝 유행가가 몽골의 눈보라를 찢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유행가는 지구상 어디를 가나 악귀를 쫓는 만국 공통의 굿판 주문이었다. 가사는 몰라도 멜로디에 맞춰 알몸을 흔들 줄은 안다. 뜻은 몰라도 후렴구에서 "아싸!" 하고 지르는 건 안다. 한국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 몽골 현지 가이드도 노래가 시작되니 이상하게 바지를 내려놓고 입을 벌린다. 인류는 참으로 대책 없는 종족이다. 고상한 대화는 안 통하는데 뽕짝 누드에는 통한다. 정치인들은 통역기를 들고도 주둥이로 싸우는데, naked 뽕짝 한 곡이면 국경이고 언어고 가식이고 체면이고 싹 다 홀라당 벗겨져 사라진다.
나 홀로 버스 밑에서 삽을 들고 묵묵히 눈을 파헤쳤다. 밖은 얼음 지옥인데, 안은 열기와 밑천이 훤히 드러난 헐벗은 축제였다. 어쩌면 인간은 지옥 불길 속에서도 알몸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진짜 인간인지 모른다. 살기 위해 옷을 벗고, 죽음을 잊기 위해 주둥이를 찢어 웃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살을 비벼대며 춤춘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마도 이것인지 모른다. 죽음이 바로 옆에 날카로운 낫을 들고 앉아 있는데, 그 죽음의 대가리에 훌렁 벗은 엉덩이를 문질러대며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
버스 안에서는 뽕짝 노래가 울려 퍼지고, 버스 밖에서는 몽골의 백색 눈보라가 미쳐 날뛰고, 버스 밑에서는 멍청한 사진작가가 미친놈처럼 대가리를 박고 눈을 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궁극의 사진이었다! 연출된 스튜디오의 매끈한 누드보다 백 배는 더 강렬한, '죽음 직전의 생존 누드'! 옷을 벗은 몸뚱이보다 더 적나라하게 홀라당 벗겨진 인간의 미친 생존 본능! 몸은 영하 30도 추위에 벌벌 떨며 시퍼렇게 질려가고 있었지만, 인간의 念(염)은 붉은 화염처럼 타오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카메라로 미친 듯이 찍고 싶었다. 물론 그때 나는 야전삽만 들고 있었지 카메라를 잡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단 한 장도 못 찍었다.
하지만 아쉬울 것 없다! 괜찮다! 사진가에게는 원래 이런 대박 사건이 남는 법이다. 못 찍은 사진이야말로 평생 우려먹는 진짜 걸작이 된다. 실제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보다,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뻥을 쳐서 찍은 사진이 역사상 더 영원히 살아남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사진가라는 인종들이 쓰는 마지막 위대한 고등사기술이다. 없던 사진을, 세계 최고로 위대한 예술이 존재했노라고 대중에게 믿게 만드는 것! 나는 그것을 ‘김가중식 뻥의 예술’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똥구멍을 쳐들고 눈밭을 향해 삽질을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는 훌렁 벗은 아가씨들의 뽕짝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계속 뺨아리를 갈겼다. 참으로 환장하게 멋진 여행이다. 나는 야외 누드를 찍으러 몽골까지 왔는데, 정작 여기서 찍고 있는 것은 미끈한 처녀의 몸매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괴물의 밑바닥 생존 본능이었다. 죽음을 까맣게 잊은 알몸의 인간들은 모두 미치도록 행복했다. 삽질은 방구석 철학자들의 헛소리보다 훨씬 정직했다. 몽골 한복판의 동사 직전 현장에서 벌어진 이 광란은, 저승사자마저 질려서 도망치게 만드는 만국 공통의 미친 누드 엑소시즘이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 눈밭의 지평선을 찢으며 괴물 한 대가 걸어왔다. 자동차가 아니었다. 고지라의 대가리에 굴뚝을 박아놓은 듯한 스팀펑크 목탄차였다. 지붕 위로 솟은 굵은 굴뚝에서 시커먼 탄소 폭탄 연기를 폭풍처럼 뿜어내는데, 어릴 적 생선가게 나무판자 궤짝을 대충 못질하여 때워 붙인 기괴한 몰골이었다.
그 괴물이 굵은 쇠동아줄을 꺼내더니, 우리 버스의 똥구멍에 푹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 괴물이 수컷 말의 미친 트림 같은 소리를 토해냈다. "푸르르르르-!" 똥구멍에서 하늘을 향해 시커먼 연기를 먹장구름처럼 토해내더니, 버스가 두 발로 선 야생마처럼 펄쩍 뛰며 곤두섰다. 그 괴물은 버스 바퀴가 구르든 말든, 몽골 땅개미가 터지든 말든, 지옥의 데드리프트로 버스를 질질 끌어냈다. 슈퍼맨도 대가리를 박고 울고 갈 무지막지한 뻥의 파워였다!
버스가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간도 결국 저렇게 인생이라는 괴물에게 질질 끌려가는 존재가 아닌가? 학교에 끌려가고, 전장(군대)으로 끌려가고, 직장에 끌려가고, 통장 잔고와 돈에 끌려가고, 헛된 명예에 끌려가고... 마침내 마지막 순간에는 칠성판 관짝 속으로 알몸이 된 채 질질 끌려들어간다. 버스나 인간이나 별 차이가 없다.
단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눈구덩이에 빠진 버스는 굵은 쇠줄이라도 똥구멍에 묶어 끌어낼 수 있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기 인생이라는 미친 눈구덩이에 빠지면... 그 어떤 전능한 신도 끌어내 줄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스스로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미친 듯이 뽕짝 노래를 부르며 눈밭을 향해 삽질을 해 대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