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눈이었다. 끝이 없었다. 왼쪽에도 눈. 오른쪽에도 눈. 앞에도 눈. 뒤에도 눈. 위에도 눈. 심지어 내 머릿속에도 눈이었다. 세상이 전부 하얗게 미쳐 있었다. 사진가에게는 천국이었다. 모델에게는 지옥이었다. 사진가는 좋아 죽고, 모델은 죽기 싫은 풍경이었다.
광활한 눈 벌판.
끝없이 펼쳐진 하얀 대지.
이보다 더 완벽한 누드 촬영장이 또 있을까.
그런데 바로 그때 문제가 하나 떠올랐다. 사람의 눈이었다. 눈(雪)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눈(目)은 말이 많다. 특히 몽골 사람들의 눈은 무서웠다. 일설엔 몽골 사람 가운데는 시력이 5.0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10미터 앞에 사람이 서 있어도
“저 사람이 누구지?” 하면서 눈을 찡그리는데, 몽골 사람은 초원 저 끝에서“저기 이상한 한국 사진가 하나 왔다.” 하고 알아볼 것 같았다.
시력 5.0의 인간들이 사는 초원에서 누드 촬영을 한다는 것은 예술이 아니라 외교 문제였다. 저 멀리 양을 치던 목동이 망원경도 없이 우리를 발견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목동도 손을 흔들었다. 저 사람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촬영계획까지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드는커녕 카메라 가방을 여는 순간부터 들킬 것 같았다.
눈이 많다고 좋은 촬영장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눈이 많으면 눈밭은 세상에서 가장 좁은 촬영장이 된다. 누드 촬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추위가 아니라 시선이다.
결국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인간은 참 이상하다. 방법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이 정상인데, 예술가는 방법이 없을수록 방법을 만든다.
그리고 미친 예술가는?
방법이 없어도 일단 시작한다. 우리는 결국 차들이 뜸한 길 없는 벌판으로 들어갔다. 나는 외쳤다. “젠장! 모험이다!” 그리고 버스와 밴을 세웠다. “배수진을 쳐라!”
버스와 밴이 병풍처럼 늘어섰다. 바람을 막고 사람의 시선을 막고, 가능하면 하늘의 시선까지 막아보자는 작전이었다. 이것은 촬영장이 아니었다. 당나라 군대를 막아선 안시성이었고, 칭기즈칸의 기마군단과 대한민국 사진가의 삼각대가 맞붙는 대륙 최후의 예술전쟁이었다.
완벽했다.
적어도 인간의 눈에는 그랬다.
그런데 자연은 인간보다 훨씬 영리했다.
바람은 버스와 밴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비집고 들어왔다. 눈이 날렸다. 모델들이 떨었다. 스태프들이 떨었다. 나도 떨었다. 카메라도 떨었다.
사진가는 참 이상한 동물이다. 자기도 추워 죽겠으면서 모델에게 묻는다.
“괜찮아요?”
모델이 떨면서 대답한다.
“안 괜찮아요.”
그러면 사진가는 다시 묻는다.
“조금만 더 할 수 있죠?”
이것이 예술이다. 정확히 말하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이다.
오후 3시.
몽골의 동토가 갑자기 냉장고 냉동실로 변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체온 올리는 특효약이 있습니다.”
나는 믿었다.
예술가는 믿음이 강한 사람이다.
특히 자기에게 유리한 말은 잘 믿는다. 모델들에게 특효약을 바르게 했다. 그리고 30초쯤 지나자,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악!”
“뜨거워!”
“뭐 발랐어요?”
“눈에 들어가면 안 돼!”
그것은 체온 상승제가 아니었다. 러시아 어디선가 흘러 들어온 정체불명의 캡사이신 계열 연고였다. 체온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게 인생의 마지막 교훈을 가르치는 연고였다.
한 모델이 눈밭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또 한 명은 눈을 퍼서 몸에 문질렀다. 다른 사람은 밴으로 달려갔다. 촬영장은 순식간에 누드 촬영장에서 인간 대 자연의 생존 실험장으로 변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멍하니 서 있었다.
셔터를 누를까?
사람을 구할까?
예술을 할까?
인간이 될까?
그리고 사진가는 말했다.
“일단 카메라는 챙기자.”
나는 그 순간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았다.
사진가였다. 미친 사진가. 총 촬영시간은 고작 5분이었다.
5분.
예술사에 기록하기에는 너무 짧고,
사람이 고생하기에는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이제부터였다. 스태프들이 나를 둘러쌌다. 리더격인 잉케와 배기가 앞으로 나왔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사진 찍는다며!”
“왜 비디오를 돌려!”
“버스 안에서는 도대체 뭘 촬영한 거야!” 그 들판의 이리 떼들인가? 빙 둘러싸고 짖어대는 거구들의 숲에 쌓여 가뜩이나 작은 나는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었다. 나는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언어가 달랐다. 문화가 달랐다. 예술관이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가 난 인간 앞에서 철학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들아. 모바일 인터넷의 위대함을 아느냐. 스틸 사진만 가지고 먹고살던 시대는 끝났다. 사진가는 이제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찍고, 글도 쓰고, 유튜브도 해야 한다. 카메라 하나 들고 혼자서 신문사와 방송국과 영화사를 다 해야 한다.’
그러나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철학도 중요하지만 목숨은 더 중요하다. 자칫 말 꽁무니에 내 작은 몸뚱이를 밧줄에 매달고 대설원의 지평선 너머로 달려 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날 나는 역사상 최초의 몽골 누드 생존 철학을 완성했다. 누드가 아니었다. 생존이었다.
생존 퍼포먼스.
미켈란젤로가 이곳에 왔다면 다비드상을 만들기 전에 본인이 먼저 대리석처럼 하얗게 얼었을 것이다. 피카소가 왔다면 입체주의보다 먼저 모델에게 외투를 입혔을 것이다. 아비뇽의 처녀들에 입힌 외투를 상상하니 그 와중에 웃음이 번진다. 고흐가 왔다면 새하얀 눈밭에 샛노란 해바라기를 수없이 꽂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사진가였다. 그래서 찍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기할 줄 몰랐다. 사진가는 가끔 예술가가 아니라 고집을 카메라로 찍는 벽창호다. 그날도 그랬다. 5분. 딱 5분. 그런데 그 5분 안에
추위가 있었고,
눈이 있었고,
공포가 있었고,
분노가 있었고,
인내가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인간의 본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 더한 고집이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추우면 옷을 입는 것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추워도 잠깐 옷을 벗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친 예술은 무엇인가?
추워 죽겠는데 왜 벗었는지 끝까지 설명하는 것이다. 나는 그날 그것을 알았다.
누드는 단순히 몸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었다. 누드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었다.
몸이 떨리는 순간,
모델은 더 이상 모델이 아니었다. 그저 추위를 견디는 인간이었다. 스태프는 스태프가 아니었다. 자기 생각을 가진 인간이었다.
사진가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끝까지 셔터를 누르려는 고집불통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예술은 포즈를 버렸다.
연출을 버렸다.
폼을 버렸다.
그리고
인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다. 사진가는 세상을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찍고 있었다. 모델의 몸을 찍으면서 자기의 욕망을 찍고, 풍경을 찍으면서 자기의 환상을 찍고, 실패를 찍으면서 자기의 자존심을 찍는다.
그렇다면 카메라란 무엇인가?
렌즈가 달린 기계?
아니다.
인간의 정신이 세상을 훔쳐보는 작은 구멍이다. 그날 내 카메라에는 눈밭만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 공포, 분노, 허영, 고집, 그리고 웃음까지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김가중식 미친 카메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카메라는 이상하다. 성공보다 실패를 좋아한다.완벽한 장면보다 망가지는 장면을 좋아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별로 재미가 없다. 모든 것이 꼬여버린 순간, 아무것도 뜻대로 되지 않는 순간, 그때 갑자기 눈을 뜬다.
좋은 사진가는 좋은 장면을 찍는다.
위대한 사진가는 나쁜 장면에서도 의미를 찾아낸다.
그리고 미친 사진가는? 망한 사건을 걸작이라고 끝까지 우긴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장소를 찾았다.
실패했다.
다른 장소로 갔다.
추웠다.
모델들이 떨었다.
스태프가 화났다.
비디오 문제가 터졌다.
촬영은 5분 만에 끝났다.
그리고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끝났습니다.”
누군가 물었다.
“뭐가요?”
나는 대답했다.
“예술이요.”
그들은 웃지 않았다.
나도 웃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진지했다.
그러나 차에 올라타는 순간,
나는 혼자 웃었다.
**젠장. 5분 찍고 예술이라고?**
그렇다. 예술가는 원래 그런 인간이다. 사건이 길면 작품이 되고, 사건이 짧으면 철학이 된다.
사건이 완전히 망하면? 걸작이라고 우긴다. 나는 그날 몽골의 눈밭에서 누드를 찍으러 갔다. 그런데 정작 카메라에 찍힌 것은 몸이 아니었다. 인간이었다. 추위에 떠는 인간. 화를 내는 인간. 걱정하는 인간. 참는 인간. 고집 부리는 인간.
그리고 실패한 상황에서도
무엇인가를 작품으로 만들려고 발버둥치는 인간.
그래서 나는 그날의 촬영을
〈몽골 5분 누드철학〉 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5분밖에 찍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그 5분은 길었다.
사진 한 장은 한순간을 기록한다.
그러나 미친 예술은
그 한순간에 사건을 집어넣고,
역사를 집어넣고,
철학을 집어넣고,
마지막에는
뻥까지 집어넣는다.
눈밭은 하얗다.
몸도 하얗다.
세상도 하얗다.
그런데 그 하얀 세상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검은색으로 드러난 것은
몸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망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누드란 벗는 것이 아니다.
숨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모델은 추위 앞에서 숨길 수 없었다.
스태프는 분노 앞에서 숨길 수 없었다.
사진가는 실패 앞에서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예술은 마지막으로
자기의 허세까지 벗어버렸다. 그리고 그 텅빈 그곳에 뻥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사건을 작품으로 바꾸는 사람이다.
미친 예술가는 한 단계 더 나간다.
사건이 없으면 사건을 만들고,
사건이 망하면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가 과장되면 철학이라고 부르고,
철학까지 의심받으면 판타지라고 선언한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나는 차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었다.
버스가 움직였다.
밴도 움직였다.
모델들은 담요를 뒤집어썼다.
스태프들은 여전히 투덜거렸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끝없는 눈밭이었다.
하얀 세상이었다.
그때 멀리서 목동 하나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손을 흔들었다.
목동도 손을 흔들었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혹시 저 사람이 다 본 것은 아닐까?
그런데 목동이 외쳤다.
“한국 사람!”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지?”
목동이 말했다.
“멀리서 봐도 알지.”
나는 물었다.
“뭘 보고?”
목동이 대답했다.
“사진가잖아.”
“어떻게 알았습니까?”
목동이 웃으며 말했다.
“카메라보다 먼저 미친 짓을 들고 다니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나는 몽골에서
칭스보다 위대한 철학자를 만났다.
양치기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던졌다.
“사진가는 추우면 집에 가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예술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다.
나는 차창 밖으로 눈밭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에라, 젠장.” 일단 살아서 귀국 해야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