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시작된 누드 철학

입력 2026년08월31일 10시09분 김가중 조회수 181


- 누드, 예술과 철학을 입다.

사실보다 재미있게,

진실보다 웃기게,

철학보다 황당하게.

예술은 논리가 아니다. illogical nude artist 내가 불리고 싶은 이름이다.

 

나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의 모든 것을 예술이라고 우기는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동안만큼은 그랬다.

 

역사는 원래 거짓말을 잘한다. 교과서에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왕은 위대해지고, 장군은 용감해지고, 백성은 착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그 모든 위대한 것들이 갑자기 우스워진다. 나는 그 틈을 노렸다.

 

역사를 뒤집고, 예술을 뒤집고, 마지막에는 옷까지 뒤집는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누드 철학이었다. 사람은 옷을 벗는 순간 알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평생 입고 살던 관념의 껍질을 하나씩 벗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것을 설명하려면 너무 철학적이고, 실행하려면 너무 미친 짓이라는 데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버스는 대형 관광버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승용차도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을 실어 나르는 철제 상자였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 운전사는 무슨 원수를 갚으러 가는 사람처럼 버스를 몰아댔다. 눈으로 뒤덮인 벌판을 뱀장어처럼 요동치며 달렸다. 나는 좌우로 흔들리면서 생각했다. ‘이 정도면 촬영보다 생존이 먼저 아닌가?’

 

그런데 사진가는 원래 이상한 동물이다.

일반적인 인간의 생존 본능은 위험이 닥치면 몸을 사리지만, '사진가'라는 변종 생물체들은 피가 거꾸로 솟구칠수록 렌즈부터 고쳐 잡는다. 역사가 증명하듯 그들은 신이 내린 목숨보다 프레임 안에 담길 찰나의 거짓과 진실에 더 집착한다. 추락하는 헬기 안에서 죽음의 공포에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렌즈 초점이 맞았는지 확인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녹화 버튼을 누르고 있는 광기.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된 그 기괴한 수수께끼 같은 장면은 인간이 가진 생존 본능을 비웃는 가장 완벽한 블랙코미디다.

아마존의 서슬 퍼런 집어삼킴 속에서도 한 여류 다큐 작가는 거침없이 역사적 소설을 써 내려갔다. 배가 뒤집혀 거친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는 그 와중에도,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살려달라"는 인간적인 비명이 아니었다.

"내 필름! 저기 떠내려가는 내 필름 잡아라!“

 

익사 직전의 절박한 단말마조차 자신의 목숨이 아닌 흔들리는 필름 통을 향해 뻗어 나간다. 남들이 보기엔 미친 얼간이들의 황당한 짓거리일지 몰라도, 사실보다 더 사실 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이 예술적 광기야말로 세상을 뒤집는 사진가들의 잔혹하고도 지독한 뻥의 진짜 철학이다.

 

차창에는 사람들의 입김이 하얗게 얼어붙어 있었다. 밖은 눈밭이고, 안은 사람들의 체온과 긴장으로 가득했다. 빛은 들어오지 않았다. 셔터스피드는 계속 떨어졌다.

사진가는 빛이 없으면 한숨을 쉬고,

모델은 옷이 두꺼우면 한숨을 쉰다.

나는 그 둘을 한꺼번에 해결할 방법을 생각했다. 갑자기 비명처럼 단말마를 내 질렀다.

, 여기서 촬영합시다.”

 

모두가 하얗게 바라봤다. 일순 노출이 올라갈 정도였다.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옷을 벗고.”

 

이번에는 버스 안이 더욱 조용해졌다. 숨소리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주 조용했다.

심지어 엔진 소리까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옷을 벗으라고?’

 

그들의 표정에는 그런 말이 적혀 있었다. 나도 안다. 정상적인 작가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정상적인 작가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사진을 찍으러 몽골까지 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증거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누드라는 것은 옷을 벗는 게 아닙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더 진지해졌다.

옷을 벗는다는 것은 인간이 사회로부터 받은 가장 오래된 명령 하나를 잠시 거부하는 겁니다.”

 

여전히 조용했다. 아마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 역시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예술은 원래 그렇다. 무조건 먼저 말하고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고 나중에 자신도 무슨 말을 했는지 고민한다. 나는 그것을 김가중식 누드 철학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철학이 너무 거창하면 사람들은 의심한다. 그러나 김가중식이라고 붙이면 이상하게 모든 것이 예술처럼 보인다. 엔진 소리마저 숨을 죽인 침묵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람, 아니 인간이라는 동물은 참 이상하다.

죽음보다 더 무거운 침묵은 결단코 견디지 못한다. 차라리 총알이 날아오거나 폭탄이 터지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침묵의 순간이 인간에게는 가장 잔인하다.

 

결국

구메가 꿈지럭거리기 시작했다.

얼굴도 길고, 몸도 길고, 머리카락까지 길었다.

한마디로 처음부터 끝까지 기럭지가 긴 여자였다.

저렇게 길어서야 몽골 초원에서 길을 잃어도 몸 하나만 세워 놓으면 이정표가 되겠구나.’

 

잠시 후 아무르자갈도 움직일 듯한 눈치를 보였다.

새하얀 우윳빛 피부. 아니, 우윳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탐스럽고, 복숭아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육감적이었다. 나는 또다시 머릿속에서 사전을 뒤졌다.

수밀도.’

 

그래, 그 단어가 제일 적당했다.

그녀의 몸은 이상하게 사람의 숨을 멎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사진가는 원래 셔터를 눌러야 하는 인간인데, 가끔은 모델을 보는 순간 셔터보다 먼저 자신의 호흡이 멈춘다. 이것이 사진가에게 내려진 가장 잔인한 형벌이다. 사진은 찍어야 하는데 숨을 못 쉰다.

 

간볼라는 수줍은 얼굴 때문에 처음에는 얌전한 여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위장이었다. 작고 앙증맞은 체구에 적당한 볼륨,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포근함이 있었다. 마치 우리네 어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포근함 속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이 들어 있었다. 그녀를 덥썩 물어뜯고 싶을 때가 있었다.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가 먹잇감의 목덜미를 숨이 끊어질때까지 몰고 흔들때의 영상이 스치고 지나가곤 했다.

여자는 역시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진가는 모델을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 렌즈 앞에서는 누구나 다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역시 인간의 용기는 추위보다 강하구나.’

 

영하의 몽골 초원에서 이 말을 떠올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사고방식에서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너민은 아예 태연했다.

직업이 스트립 댄서인 그녀에게 이런 상황은 어쩌면 일상보다 조금 더 추운 무대였을지도 모른다. 너민의 몸은 유연했다. 마치 뱀장어 같았다. 아니, 자세히 보면 문어가 어느 날 갑자기 인간으로 환생했는데 아직 문어 시절의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몸이 움직이는 방향과 관절의 방향이 내 상식과 달랐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도대체 저 몸에는 관절이 몇 개나 있는 것인가?’

 

사진가는 이런 순간에도 예술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예술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모델을 바라보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너민의 친구 어깃과 오까도 당당했다.

어깃은 가녀린 몸매에 이상할 정도로 기품이 넘쳤다. 그녀에게 몽골 황녀의 복장과 머리에 면류관 하나를 얹으면, 정말 칭스의 궁전에서 시공간을 뚫고 방금 튀어나온 공주가 되곤 했다.

역사는 초원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역사가 남아 있었다. 문제는 내가 그 역사를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까는 또 달랐다.

몽골 여인답지 않게 피부가 조금 까무잡잡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더 강렬했다. 탄력이 넘쳤고, 눈매는 마치 화살촉처럼 날카로웠다. 그 눈빛 하나가 나의 심장을 후벼팠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몽골 초원의 추위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사람의 눈빛이었다. 특히 사진가를 바라보는 모델의 눈빛은 더욱 그렇다. 카메라를 든 순간 사진가는 자신이 사냥꾼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사진가가 사냥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셔터를 잡은 손을 바라보았다. 손은 멀쩡했다. 카메라도 멀쩡했다. 렌즈도 멀쩡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 정신만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것이 바로 김가중식 사진의 시작이다.

추위와 싸우고, 침묵과 싸우고, 모델과 싸우고,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과 싸운다. 그리고 그 모든 싸움의 결과물을 우리는 아주 태연하게 예술이라고 부른다.

 

참으로 편리한 단어다.

망하면 실패고,

조금 덜 망하면 실험이고,

잘 망하면 예술이다.

그리고 아주 잘 망하면 걸작이 된다.

이렇게 죽음보다 깊은 침묵이 깨졌다.

 

아니,

어쩌면 그때부터 진짜 침묵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버스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사람들이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하나의 장면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누드는 몸의 문제가 아니라 시선의 문제라는 것.

같은 사람을 보고도 누군가는 부끄러움을 보고,

누군가는 아름다움을 보고,

누군가는 예술을 보고,

누군가는 그냥 추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진가는 그 가운데서 셔터를 누른다.

사진가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남들이 지나치는 순간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렇다면 옷을 벗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사진가의 고정관념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내 누드 철학은 꽈배기처럼 배배 꼬였다.

몸을 벗기는 것은 모델이 아니라 사진가의 시선이다. 모델이 옷을 벗었다고 해서 누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진가가 자기 머릿속의 낡은 관념을 벗겨내야 비로소 누드가 된다. 그러므로 진짜 누드 사진은 알몸을 찍는 사진이 아니다. 사진가 자신의 알몸 같은 생각을 찍는 것이다.

 

버스는 계속 흔들렸다.

카메라도 흔들렸다.

셔터도 흔들렸다.

내 철학도 흔들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예술은 위대하다.

철학도 위대하다.

카카야, 오늘 네가 벗겨야 할 것은 인간의 관념이 아니라 네 위선일지도 모른다.”

 

그날 몽골의 눈밭을 달리던 작은 버스 안에서 그렇게 누드 촬영은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드 철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역사는 또 한 번 엉뚱한 방향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역사책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 이야기였다. 하지만 사진가는 알고 있었다.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가 때로는 역사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사실은 심심하고,

진실은 무겁고,

예술은 가끔 너무 진지하다.

 

나는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역사를 조금 비틀었다.

아주 조금.

아니,

사실은 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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