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사

입력 2026년08월01일 15시40분 김가중 조회수 135

세상의 모든 여행은 대개 비슷하다.

누군가는 역사를 만나고, 누군가는 장엄한 풍경을 만나고, 또 누군가는 그 나라의 음식과 사람을 만난다. 수천 년 동안 기록된 여행기는 대체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기이한 여행기 가운데 하나는 아마 걸리버 여행기일 것이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세상을 만났기 때문이다그런데 돌이켜 보면, 내 여행기는 걸리버 여행기보다 훨씬 기이했다.

 

나는 잠시후에 몽골에서 처음 만난 33 명의 여인들과 카메라 앞에 서야된다.

그들과 함께 풍경을 보는 여행도 아니고, 술잔을 기울이는 여행도 아니었다. 나는 사진가였고, 그들에게 예술 작업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그것도 평범한 인물사진이 아니라, 누드 사진이었다.

 

생각만 해도 입안이 바짝 마르고 목구멍에 쓴물이 고인다.

호텔 로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수십 번이나 첫인사를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먼저 제 작품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불편하시면 언제든 거절하셔도 됩니다.'

 

머릿속에서는 완벽했던 문장들이 로비 문이 열리는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33 명의 여인들이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

처음 마주치는 눈빛들.

 

그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내게 모였다.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 짧은 몇 초가 몇 분처럼 길게 흘렀다.

나는 웃으려 했지만 얼굴 근육이 굳어 있었고, 몸은 얼어붙은 돌맹이보다 더 뻣뻣해 졌다..

 

사진을 수십 년 찍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순간만큼은 늘 처음이었다.

처음 만나는 낯선 사람에게 예술을 이야기하는 일.

그리고 그 예술을 위해 자신의 몸을 믿고 맡겨 달라고 부탁하는 일.

 

그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카메라의 성능도, 조명의 각도도, 렌즈의 화각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믿는 문제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언제나 그 첫 만남이 가장 힘들었다.

촬영에 앞서 작품의 취지와 철학을 충분히 설명하고, 계약과 진행 방식도 하나하나 안내했다. 준비는 언제나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면 그 모든 준비가 한순간에 하얗게 지워졌다.

 

'나는 오늘 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블라디보스톡 모델에이전시의 수 많은 여인들 앞에 섰을 때 그녀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라 치켜세우며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우며 격려해 주었다. 결과는 그녀들을 한 비행기 실어다 경기 양지의 지산스키장에서 백주대낮에 상상을 불허하는 누드쇼를 연출하였다. ’국제누드 100인전얘기다.

 

잠시 후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는 호흡을 멈추었다.

33 명의 몽골 여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서 있었다.

누군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지만 66개의 눈동자가 내 표정 하나, 손짓 하나, 말투 하나까지 주시하였다.

 

낯선 나라에서 온 처음 만나는 한국의 누드작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정말 몸을 찍으려는 사람일까, 어디까지 벗으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을 만나려는 사람일까? 누드란 말은 나라마다 문화마다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어느 정도까지 노출하는 것을 누드라고 하는지 정해진 룰이 없다.

 

어쩌면 그녀들도 불안했을 것이다.

사실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메라보다 먼저 심장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이 낯선 만남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자세히 눈을 마주치진 못 햇지만 흘낏흘낏 스친 그녀들의 눈빛은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그 맑음 속에는 초원의 바람도 있었고, 긴 겨울을 견뎌낸 강인함도 있었으며, 수천 년 유목민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그 눈빛 속에서 사람의 육체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를 보았다.

나의 사진은 언제나 몸보다 먼저 영혼을 만난다.

나의 누드는 옷을 벗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조금씩 내려놓는 일이다.

셔터는 피부를 기록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신뢰를 쌓아가는 시간을 기록하는 도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조금은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고, 조금은 서툴게 같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처음 만난 사람들 사이를 채우는 것은 언제나 말이 아니라 침묵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침묵은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작은 소리와, 누군가 흘린 웃음 한 조각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낯섦은 언어보다 먼저 식사를 통해 허물어졌다.

한 끼의 밥은 국적을 지우고, 한 잔의 차는 경계를 허문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마음을 함께 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스튜디오로 자리를 옮겼다.

 

거창한 촬영이 아니라, 그저 테스트 촬영.

그런데 나는 오래전부터 '테스트'라는 단어를 다르게 해석해 왔다.

세상은 테스트를 실력의 예행연습쯤으로 생각하지만, 내게 테스트는 모든 결과를 내려놓는 시간이다.

 

잘 찍어야 한다는 강박도 없고, 실패를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증명할 것도, 경쟁할 것도, 완성해야 할 의무도 없다.

어쩌면 테스트란 자유라는 이름의 또 다른 얼굴이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무념무상이라 하고, 철학자는 해탈이라 부르며, 기독교는 사랑이라 말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예술은 완벽을 향해 달려가는 일이 아니라, 완벽이라는 족쇄를 벗어 던지는 순간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작품은 가장 자유로운 마음에서 태어난다.

가장 무거운 셔터는 손가락이 아니라 욕심이 누르고, 가장 선명한 사진은 렌즈가 아니라 마음이 만든다.

 

언제부턴가 나는 모든 작업을 테스트 촬영하듯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작업은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되었고, 부담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 철학을 사람들은 종종 허풍이라 말했고 김가중의 뻥의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나는 웃으며 개똥철학이라고 받아넘겼다.

 

예술은 논리가 아니다. Illogical Art.

논리는 이미 존재하는 세상을 설명하지만,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먼저 꿈꾼다.

 

나는 정상적인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는다.

정상은 언제나 평균으로 흘러가고, 평균은 결국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완성하기 위해 셔터를 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을 망가뜨리기 위해 셔터를 누른다.

익숙한 구도를 비틀고, 상식을 뒤집고, 아름다움조차 의심한다.

망가진다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나의 철학은 역행론이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가리키는 길에서는 새로운 풍경이 태어나지 않는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다면 나는 서쪽으로 간다.

세상이 위를 바라볼 때 나는 아래를 들여다본다.

모두가 같은 답을 외칠 때 나는 질문부터 다시 만든다.

예술은 정답을 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아직 이름조차 붙지 않은 질문을 세상에 던지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내 마음은 그렇게 쉬운 테스트 촬영조차도 미루고 싶었다.

하룻쯤은 카메라를 쉬게 하고 싶었다.

울란바토르의 공기를 먼저 마시고,

초원의 바람을 먼저 듣고,

사람들의 삶을 먼저 만나고 싶었다.

 

좋은 사진은 좋은 빛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이해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는 달랐다.

해외 원정을 떠나면 오직 누드 한 컷이라도 더 얻기 위해 뛰어다녔다.

풍경은 배경이었고, 역사는 장식이었으며, 여행은 이동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여체는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라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문이라는 것을.

 

그 문을 지나면 초원이 있고,

역사가 있으며,

문화가 있고,

인간이 있다.

 

몸은 하나의 풍경이고,

풍경은 하나의 역사이며,

역사는 결국 사람의 몸으로 완성된다.

 

특히 몽골은 더욱 그러했다.

이 땅의 사람들은 거친 자연과 함께 살아왔고,

제국의 영광과 몰락을 모두 품은 채 오늘을 살아간다.

그들의 삶은 광활한 초원만큼 장엄했고, 바람처럼 자유로웠으며, 긴 겨울만큼 인내로웠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우리 민족과의 인연이다.

몽골 사람들은 한국을 흔히 형제의 나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느낀 인연은 그 말보다 조금 더 깊었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래전 같은 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기억을 아직도 마음 어딘가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날 호텔 로비에서 만난 열여섯 명의 여인들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었다.

그들은 몽골이라는 거대한 초원이 내게 보낸 첫 번째 인사였고,

나는 그 인사 앞에서 비로소 카메라를 든 여행자가 아니라, 사람을 배우러 온 한 명의 순례자가 되었다.

 

모델 프로필

 

No 나이 이름

01 170cm 18 MUNKHJARGAL

02 172 16 ALTANZUL

03 170 24 ERDENECHIMEG

04 180 18 MUNKHCHIMEG

05 168 18 PUREVSUREN

06 168 19 ZULTSETSEG

07 165 30 URGAMAL TSETSEG

08 169 18 ERDENE SUBD

09 168 18 OTGON TSETSEG

10 168 18 MUNGUNCHIMEG

11 160 22 GANTSETSEG

12 162 23 ODONCHIMEG

13 170 18 NOMIN ERDENE

14 160 21 MUNGUNDUSAL

15 160 25 TSENGEL

16 168 22 BOLORTUYA

17 165 18 UYANGA

18 170 19 GANSHIR

19 176 22 OYUN-OD

20 174 16 BATOCHIMEG

21 174 21 MUNKHJARGAL

22 168 18 OTGONBAT

23 167 18 BAYASALMAA

24 175 20 BOLORMAA

25 165 19 ODMAA

26 175 22 OYUN-OD

27 170 26 UNURSAIKHAN

28 165 20 GANBOLOR

29 173 20 SARKHAI

30 165 27 ULZIIYILS

31 166 23 ARIUNTUNGALAG

32 175 20 SODTUYA

33 160 21 UCH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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