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예술을 입히다. 金嘉中 누드 철학
창밖의 보랏빛 스모그에서 눈을 거두고 나는 다시 念을 불렀다.
"야, 마르코. 또 나와."
녀석은 언제나 그렇듯 허풍 한 자루를 메고 나타났다.
솔직히 내 발가벗은 누드여행기보다 저 양반의 이야기가 백 배는 더 웃긴다.
특히 마르코에게 요구한 것은 사실보다 웃겨야 되고 진실보다 재미있어야 된다였다.
어느 날이었다.
비단과 향료, 보석을 산더미처럼 싣고 온 대상들이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술은 항아리째 비우고, 양고기는 산처럼 쌓아 놓고,
우두머리는 "오늘은 돈 걱정 말고 천국이나 구경하자." 하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그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허리가 두 번 접힌 할머니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아이고 나으리들, 천국 구경 안 하실래요?"
대상 하나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천국? 할머니들 얼굴을 보니 천국은커녕 염라대왕 대기실 같은디?"
그러자 할머니가 씨익 웃었다.
"천국은 우리가 아니고, 상품이 따로 있지."
"상품?"
"우선 술부터 한 잔씩 사시구랴."
"아니, 이 양반들이 술 장사하러 왔소?"
"술도 사고, 꿈도 사고."
대상들이 킥킥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밖에서 꽃향기가 밀려왔다.
할머니들이 양옆으로 갈라서자
곱게 단장한 어린 처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지옥 같던 객잔이 순식간에 천국 분양사무소가 되어 버렸다.
"아이고."
대상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게 무슨 나라요?"
할머니가 설명했다.
"이 나라 총각들은 숫처녀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뭐라고?"
"경험치가 없으면 불안하다우."
"세상에 이런 나라가?"
"그래서 외국 손님들이 첫 번째 별을 달아주면,
그 목걸이를 차고 동네 총각에게 시집을 갑니다."
"목걸이?"
"예."
"몇 개쯤 차야 인기 상품이 되오?"
"스무 개쯤."
대상들은 술을 뿜었다.
"스무 개?"
"그래야 A급 신부지."
"열아홉 개면?"
"B급."
"한 개도 없으면?"
"평생 재고."
객잔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마르코를 바라봤다.
"야, 이거 진짜냐?"
마르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본 게 사실인지,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역사는 원래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쓰는 것이 아니라,
입담 좋은 사람이 쓰는 법이다.
물론 이런 풍습이 실제였는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동물은 이상하다.
힘센 유전자는 남기고 싶고,
예쁜 유전자는 갖고 싶고,
돈 많은 유전자까지 욕심낸다.
그래 놓고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고,
도덕이라 부르고,
전통이라 부른다.
동물들은 솔직하다.
사자는 힘으로,
공작은 깃털로,
사슴은 뿔로 경쟁한다.
사람만 유독 계약서를 쓴다.
혼인신고도 하고,
예물도 주고,
축의금도 걷고,
심지어 이혼 위자료 계산기까지 만든다.
욕망은 원시적인데
포장지만 현대식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욕심 많은 종족은 역시 인간이었다.
전쟁에서는 남의 나라 여인을 수천 명씩 데려오면서도,
정작 자기 아내가 딴 남자를 쳐다보면 나라가 망한 것처럼 분노한다.
그래서였을까.
칭기스칸의 예케 자사크(대법령) 는 단호했다.
"간통한 자는 사형."
참으로 묘하다.
수십 개 나라를 정복하는 것은 영웅이고,
담장 하나 넘는 것은 사형이다.
역사는 늘 이랬다.
황제는 후궁 삼천 명을 거느리면 성군이라 불렸고,
백성은 옆집 담장만 넘어도 패가망신이었다.
결국 법은 정의를 만들기보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 먼저 태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다시 念을 불렀다.
"야, 마르코."
"왜?"
"사실은 어디 있냐?"
마르코가 빙긋 웃었다.
"사실은 학자가 찾고,
웃음은 이야기꾼이 만든다.
그리고 오래 살아남는 건…
대개 웃긴 쪽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