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메이킹 포토'의 철학... 사과나무부터 몽골의 지평선까지
한국사진방송 배진권 | 2026. 07. 26
어제 25일, 성남시청 강당에서는 한국 사진계의 거장 김광수 작가의 사진 철학과 장기 탐구 과정을 심도 있게 짚어보는 뜻깊은 '성남 포토콘서트'가 열렸다. 김영호 강동문화재단 대표이사의 진행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수많은 사진인들이 참석해 ‘구름’과 ‘사과나무’ 시리즈로 대표되는 그의 창작 궤적을 좇으며 예술적 영감을 나누었다.
결핍에서 싹튼 시선, 17년의 구름 관찰
한때 대형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상업 사진가로 승승장구했던 김광수 작가는 사업 실패라는 인생의 뼈아픈 굴곡을 맞았다. 그러나 가장 여유가 없던 시절, 그는 역설적으로 가장 먼 아프리카 투르카나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구름 대신 별의 온도가 빚어낸 ‘원색의 별’들을 발견했다. 실패와 결핍이 그를 새로운 사진의 판타지로 이끈 셈이다.
작품을 향한 그의 끈기는 단일 주제를 다루는 압도적인 시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벽만 보던 시절 우연히 발견한 하늘을 계기로 시작된 ‘구름’ 작업은 주말을 쪼개어 40여 장을 완성하는 데 무려 17년이 걸렸다. 김 작가는 “사진은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며, 에너지와 시각의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한 테마를 최소 20년은 붙잡고 탐구할 것을 후배들에게 권했다.
5톤의 모래와 흰 천이 빚어낸 '우주적 공간'
이날 참석자들의 가장 큰 이목을 끈 것은 단연 그의 대표작 ‘사과나무’ 시리즈의 제작 과정이었다. 2007년 장호원의 과수원에서 열매 맺힌 사과나무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이후, 그는 단순한 관찰자를 넘어 현장의 완벽한 연출가로 변모했다.
"가지가 엉킨 과수원에서 내 나무 한 그루만을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나무 뒤로 흰 천을 내리고, 바닥에 5톤의 모래를 깔았습니다.
하얀 천이 나무를 현실에서 단절시켜 무한대의 우주적 공간으로 만들어준 것이죠."
11년에 걸쳐 진행된 사과나무 작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육체적 노동의 산물이다. 불필요한 나뭇가지가 화면에 걸리지 않도록 스태프들이 밧줄로 다른 나무를 당겨 고정하고, 진안의 감나무를 찍기 위해 눈이 오기 전 두 달 동안 갈대밭을 정리해 모래를 깔며 비계(아시바)를 치고 첫눈을 기다렸다. 포토샵에 의존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임에도 이토록 고된 아날로그적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자연이라는 거대한 환경에 압도당하지 않고 피사체를 완벽하게 ‘내 것’으로 장악하기 위함이다.
"카메라는 없다", 장비보다 경험에 투자하는 작가주의
대형 인화 시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4x5 인치 대형 필름이나 하이엔드 디지털 중형 카메라를 활용하지만, 정작 그는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디지털 카메라를 소유하지 않고 대여해서 쓴다. 그 비용이라면 차라리 아프리카를 몇 번 더 가서 그곳의 생경한 대상을 만나겠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지론이다. 기계의 소유보다는 새로운 시각적 자극과 낯선 경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의 철학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시장을 향한 냉철한 전략: '싱싱함'과 '비틀기'
예술적 성취 못지않게 그는 미술 시장에서의 생존 전략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다. 작품이 화랑과 컬렉터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싱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막연히 찍는 것이 아니라 2026년 지금 이 시대의 감각에 맞아야 한다"며, 익숙한 피사체라도 살짝 비틀어 연출하는 ‘긴장감’과 붉은색이 주는 ‘섹시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나아가 작품의 사이즈 결정부터 액자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철저한 기획자가 되어 스스로의 작품을 완성도 있게 포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나지 않은 무한의 여정
최근 7년째 매년 여름 몽골 고비 사막을 찾아 무보정의 지평선을 캔버스에 담고 있는 김광수 작가. 며칠 뒤 또다시 몽골행 비행기에 오르는 그는 다가오는 2027년 초 강남의 갤러리에서 사과나무의 형이상학적 종착역을 보여줄 새로운 전시를 예고했다. 육체적 고단함과 비용의 한계를 뛰어넘어 렌즈 앞의 세계를 치열하게 조각해 온 그의 다음 우주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