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진방송=은형일 기자] ‘2026 대한민국국회문화예술초대전’이 연일 뜨거운 관심 속에 이어지는 가운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여든 번째 주인공으로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독창적인 프레임 미학을 선보여 온 서정희 사진작가를 만났다.
서정희 작가는 흔히 마주하는 일상과 인문환경 속에서 극적인 ‘면(面)과 색(色)’의 요소를 포착해 내어, 단순한 기록을 넘어선 시각적 기하학과 감성적 울림을 이끌어내는 작가다.
이번 초대전에서 선보인 다섯 점의 출품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분할의 카타르시스’를 고스란히 보여주며 우리 삶의 공간을 한층 더 격조 높은 예술적 층위로 끌어올린다.
▣ 서정희 작가 출품작(1~5번) 정밀 예술적 분석
1. 면과 선, 그리고 그림자가 빚어낸 순수 기하학 (출품작 1)
미색의 시멘트 외벽 위에 드리워진 짙고 옅은 그림자의 대비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우측 뒤편으로 언뜻 보이는 붉은 문과 상단의 푸른색 지붕 마감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백색 공간에 강렬한 보색 포인트와 입체감을 더한다.
이 작품은 3차원의 건축적 공간을 완벽한 2차원의 면 분할로 환원시킨다. 빛과 어둠의 경계선은 벽면의 거친 질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묵묵히 시각화한다. 모퉁이 너머 숨겨진 공간(붉은 문)은 관람객에게 미지의 상상력을 불어넣는 훌륭한 예술적 장치로 작동한다.
2. 삶의 흔적이 머무는 자리, 오렌지빛 모자의 위트 (출품작 2)
순백의 블록 담장 모서리, 비스듬히 솟은 철제 파이프에 걸려 있는 선명한 귤색 모자가 주인공이다. 그 뒤를 가로막은 민트색 벽면은 오렌지색과 대비되며 화면 전체에 경쾌하고 청량한 리듬감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이 차갑고 딱딱한 구조물 틈새에서 인간미 넘치는 온기를 포착해 냈다. 밭일을 하던 누군가가 잠시 걸어두었을 모자는 그 자체로 제주의 척박하면서도 따뜻한 삶의 애환과 휴식을 대변한다. 정형화된 면 분할 속에서 고개를 내민 주황색 오브제는 일상의 사소한 풍경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위트 있는 선언이다.
3. 시간의 궤적을 품은 붉은 드럼통과 침묵의 벽 (출품작 3)
엷은 민트빛 지붕선 아래로 거칠게 미장된 회색빛 콘크리트 벽이 넓게 펼쳐져 있다. 우측 구석, 세월의 흔적으로 붉게 녹슨 드럼통 하나가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완벽한 무게중심을 잡아준다.
이 작품은 시간의 중첩을 이야기한다. 흙과 모래의 거친 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벽면은 그 자체로 한 폭의 추상화 같으며, 오랜 노고를 버텨낸 붉은 드럼통은 산업적 흔적이 자연과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은유한다. 쓸쓸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고요한 침묵의 미학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4. 녹색 벽면 위, 우체통과 수도꼭지의 정겨운 동거 (출품작 4)
강렬하고 깊은 초록빛 외벽 모서리에 걸린 선명한 빨간색 우체통, 그리고 그 옆으로 길게 늘어진 검푸른 호스와 수도꼭지가 절묘한 시각적 균형을 이룬다.
보색 관계인 초록과 빨강의 대비가 극적인 시각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아날로그적 향수를 자극하는 우체통은 소통에 대한 그리움을, 그 옆의 수도꼭지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물의 통로로서 기능한다. 단순한 일상의 설비들이 서정희 작가의 프레임 안에서 완벽한 비례와 색채 대비를 이루며 한 편의 현대 미술 오브제로 재탄생했다.
5. 푸른 지붕 아래, 구름을 품은 창고 (출품작 5)
화면 전체를 압도하는 푸른색 양철 창고의 수직 패턴이 푸른 하늘, 뭉게구름과 수평으로 마주한다. 좌측 하단에 무심하게 놓인 주황색 러버콘(안전 고깔)은 완벽한 보색 대비를 이루며 시선의 균형을 맞춘다.
하늘의 푸름과 인공물(창고 벽면)의 푸름이 서로를 투영하듯 경계를 허문다. 거친 넝쿨 줄기가 벽을 타고 올라간 모습은 인공 구조물이 자연과 조화롭게 나이 들어가는 방식을 보여준다. 거대한 푸른색 면 속에 자리한 작은 주황색 고깔은 시각적 악센트 역할을 톡톡히 하며 작품에 강렬한 예술적 생동감을 부여한다.
▣ '면과 색의 미학'으로 제주와 삶을 노래하는 서정희
서정희 작가는 수많은 개인전과 초대전(‘분할의 카타르시스-제주의 색을 말한다’, ‘제주, 삶을 담다’ 등)을 통해 제주의 풍경을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들의 인문학적 배경이자 삶의 예술적 오브제로 해석해 왔다.
그의 렌즈는 단순히 예쁜 풍경을 좇지 않는다. 가옥의 무너진 담벼락, 낡은 양철 지붕, 길가에 놓인 사소한 물건에서 면과 선을 분할하고, 그 속에 숨겨진 색채를 극대화하여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전환한다.
이번 국회초대전에서 출품된 다섯 작품 역시 이러한 서정희 작가 특유의 미학적 철학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일상의 면과 색을 통해 삶의 애환과 진실을 읽어내는 그의 작품 세계는 국회를 찾는 많은 관람객들에게 깊은 시각적 카타르시스와 교감의 순간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