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진방송 = 은형일 기자] 한국 현대사의 가장 깊은 비극이자 여전히 아물지 않은 분단의 상처를 예술적 시선으로 포착해 낸 사진작가가 있다. 2026 국회초대전에 참가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고미자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고미자 작가는 사진 기록을 넘어 언론적 시선까지 아우르는 ‘현장형 기자 겸 작가’로 활동하며 분단의 역사적 현장을 집요하게 기록해 왔다. 그녀는 이번 국회초대전에서 그 치열한 기록물이자 예술적 정수가 담긴 연작을 대중 앞에 선보였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연작인 철원 노동당사의 아품은 단순한 역사적 유적지의 아카이브를 넘어, 한민족이 겪어야 했던 잔혹한 트라우마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아픔을 깊이 있는 예술적 내러티브로 풀어내어 사진의 품격을 한 차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 흑백의 침묵과 뼈대만 남은 그곳, 새겨진 총탄의 눈물
지붕도, 창문도 없이 오직 콘크리트 뼈대만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철원 노동당사 건물은 1945년 해방 이후 북한 치하에서 주민들을 통제하고 수많은 숙청과 고문을 자행했던 비극의 중심지였다. 러시아식으로 견고하게 지어졌다던 화려했던 벽면은 간데없고, 지금은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수히 박힌 총탄과 포탄 자국만이 흉터처럼 남아 있다.
허물어진 벽 틈새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는 마치 그 시절 이곳에서 억울하게 숨져간 이들의 비명처럼 들려온다. 건물의 겉모습은 멈춰버린 과거를 말해주지만, 그 속에 새겨진 상처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고미자 작가의 세 작품은 각각 독립된 프레임이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서사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역사적 현장의 생명력, 흑백이 주는 묵시록적 침묵, 그리고 인간의 직접적인 고통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관람객의 심상을 뒤흔든다.
■ 출품작 연작 분석: 과거의 흉터와 현재의 절규
1. 역사의 상흔을 덮는 자연의 생명력
첫 번째 작품 "1 고미자 철원 노동당사의 아품.jpg"는 전경에 푸르고 두텁게 피어난 이끼와 소나무의 질감을 강렬하게 배치하고, 원경에 흐릿하게 아웃포커싱된 철원 노동당사를 연록빛 감각으로 포착했다.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뼈대의 노동당사는 차갑고 위태로운 역사의 유물이지만, 이를 감싸 안듯 화면 앞쪽을 채운 초록의 이끼는 '시간의 흐름'과 '치유의 생명력'을 상징한다. 잔혹한 비극의 중심지가 세월 속에서 자연에 의해 서서히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배경의 흐린 당사 건물을 통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과거의 기억을 경고하듯 은유하고 있다.
2. 흑백의 침묵이 흐르는 역사적 고발
두 번째 작품 "2 고미자 철원 노동당사의 아품.jpg"는 흑백의 강렬한 명암 대비 속에서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의 전경을 세로 프레임으로 웅장하게, 동시에 서늘하게 담아냈다.
화면 좌측에서 뒤틀린 채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거친 소나무의 곡선은 노동당사의 딱딱하고 기하학적인 콘크리트 사각형 창문들과 강한 시각적 대비를 이룬다. 해골의 눈구멍처럼 뚫려 있는 창틀은 6.25 전쟁의 포화가 남긴 총탄 자국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깊은 흉터처럼 박힌 상처들을 흑백의 톤으로 정제함으로써, 소란스러운 세상 속에 던져지는 역사의 묵직한 고발이자 멈춰버린 과거의 침묵을 엄숙하게 시각화했다.
3. 인간의 육체로 환원된 잔혹한 폭력과 통곡
마지막 작품 "3 고미자 철원 노동당사의 아품.jpg"는 연작의 예술적 클라이맥스다. 차갑고 붉은 핏기가 도는 인물의 얼굴이 녹슬어가는 철제 십자가 프레임 뒤에서 고통에 겨워 울부짖고 있는 순간을 극한의 클로즈업으로 잡아냈다.
이 인물의 비명은 노동당사 벽면에 박힌 총탄 자국이 단순한 콘크리트의 파편이 아님을 웅변한다. 인물의 얼굴을 가로지른 차가운 십자가는 이념의 대립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대못이자, 인간의 살과 뼈를 뚫고 지나간 잔혹한 폭력의 메타포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터뜨리는 저 절규는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을 잃고 고향을 잃고 평생을 전쟁의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의 깊은 통곡과 닮아 있다. 녹슬어가는 철제 십자가마저도 그 무거운 슬픔을 다 가려주지 못한다.
■ 분단의 벽을 온몸으로 증명하다
노동당사의 무너진 잔해와 그 앞에 서린 피 맺힌 과거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남긴 이 거대한 상처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고미자 작가는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사냥하는 사진가에 머물지 않고, 역사적 현장 속에 숨겨진 슬픔과 민족의 아픔을 정밀하게 탐색하여 현대적 감각의 프레임으로 재구성해 냈다.
철원 노동당사에 깊게 패인 총탄의 자국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어지지 않는 분단의 벽과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아픔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관람객들의 가슴 속에 묵직한 울림과 조용한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