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嘉中 fictiot 浪漫遊戲 ‘브레송과의 조우’

입력 2026년03월20일 12시10분 김가중 조회수 255

(누드작품들은 한국사진방송-보물창고에 넣어 둡니다.)

 

내가 잡지사에 컬럼과 초대 작품을 10여동안 왕성하게 게재할 때 브레송에게서 짤막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잡지사에서 번역해 준 내용은 내가 평생 울궈먹은 인식론의 뼈대였다.

 

촬영은 인식이다.

지성과 감정과 안목 그리고 기술이 동일 궤도상에 일치되는 순간이 곧 사진이다.

고로 사진가는 대상과 자신에게 최대한 존경을 기울려야 된다.”

 

이 메시지를 당시에 이해하지 못하고 그에게 마구 욕을 퍼붓곤 했었다. 평자들의 책을 읽고 브레송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딱 깨놓고 브레송 작품의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핥고 있기 때문이다. 글은 체험이 가장 중요하다. 자신이 경험하고 체험하고 겪은 사실을 기반으로 글을 쓴다면 그것은 진짜다.

 

대한민국에서 공모전에서 가장 많은 상을 타본 필자는 브레송 작품을 공모전류의 작품으로 분석하고 있다. 놀랍게도 그의 작품 대부분이 공모전에서 상위 입상할 만한 작품들이다,

자신이 발로 뛰며 현장에서 작품을 만들어 보지 않고 공모전에서 떨어져 보지도 않고 책 몇 권 읽고 수박 겉핥기로 입만 살은 평자들의 대부분은 생라자르 역 뒷골목의 수렁을 한 신사가 펄쩍 뛰는 순간을 촬영한 작품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결정적 순간을 어쩌면 저렇게 잘 포착했을까요? 연출하거나 기교에 얽매이지 않았는데..... 라며

하나같이 결정적 순간이란 말에 엄청나게 매여 있다는 사실에 아연하다. 참 자유롭지 못하다. 사고의 폭이 너무 너무너무 좁다. 이 사람들...

 

사실 이 작품은 연출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담벽에 뚫린 구멍에 카메라를 밀착시키고 사람들이 물 위를 뛰는 순간을 촬영한 사진을 크롭하여 만든 작품이다. 헌데 필자는 그의 작품이 전혀 연출되거나 기교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에 다른 관점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있다. 그의 서거 2주년 기념전을 파리의 개선문 갤러리를 방문하여 보고 나서 엄청나게 실망했었다, 그 당시까지 필자는 브레송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진전을 보고 왜 이 사람을 프랑스의 국보라고 하지?”라며 투덜거리며 전시장을 나왔다. 그 곳에 전시된 작품들의 상당수는 드골 대통령을 수행하며 촬영한 작품들과 군대에 종군하며 촬영한 평범한 보도사진이었다.

 

내가 그를 결정적으로 존경하기 시작한 것은 작품 팔로군의 귀환을 접하고였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행진하는 장면이다. 평범한 보도 사진가였다면 그냥 군대의 행렬만 촬영했을 것이다. 보도사진은 캡션을 붙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브레송 작품엔 벙거지를 쓴 수염이 허연 노인이 전경으로 삽입되었다. 이 노인의 등장으로 평범한 보도사진에서 불후의 명작이 된 것이다.

젊은 군인들과 늙은노인의 대비, 흰색의 군복과 검은도포의 콘트라스트 대비 등 시각적인 대비도 매우 뛰어나 예술로 승화되었음은 물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철학적인 안목과 관점이었다. 벙거지를 쓴 노인은 중국의 전통 복장 차림이다. 봉건사회를 상징하고 있다. 군인들은 혁명군이다. 봉건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 어제가 가고 오늘이 오고 있다. 신구의 교체와 시대의 변천이 이 작품 한 점으로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반추하고 있다. -

같은 류의 작품들이 무척 많은데 따로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다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그의 작품은 대비라는 예술의 골격을 기반으로 촬영하고 있음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색상의 대비(흑백의 음영), 형태의 대비(사각과 원의 구성), 개념의 대비(시간 혹은 내용)

결국 그가 말한 결정적 순간이란 동적인 순간을 기술적으로 잘 포착한 것을 말한것은 아니다. “팔로군의 귀환에서 노인이 등장한 결정적 순간은 화룡정점이다. 마지막 내시에서 배경이 자금성 높은 담벼락이고 역사 저편으로 사라지는 실루엣 사람이 그림자 끝에 도달한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눌렀다. 역시 유구한 역사가 이 한 장에 기록된 심오한 작품이다.

 

브레송 사진은 기교와 연출이 없다? 사실 브레송은 노말 현상 노말 프린트로 유명하다. 촬영 자세도 제 6포지션(아이레벨) 외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렌즈도 라이카 붙박이 표준렌즈 이외엔 교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실 브레송이 연출했느냐 안 했느냐는 중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필자는 그가 촬영하는 결정적 순간에 셔터를 누르기 위하여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이미 연출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대상(모델)에게 부탁하지 않고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작품도 너무 많다. ‘그림을 들고 가는 소년외 몇 점을 유심히 분석해 보시라. 필자 같으면 그림을 거꾸로 들라 했을 것이다. 소년이 그림을 카메라에 가장 잘 보이게 안 들고 반대쪽이나 뒷면으로 들었다면? 연출 아니라고 보기엔 운이 너무 좋은 작품이다.

 

사실 브레송은 사진 하기 전에 화가였다. 그리고 영화감독이다. 또한 누드 촬영도 즐겼다. 특히 그의 작품 대부분이 황금분할 구도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 앞으로 그는 절대로 연출하지 않는다. 라는 무식한 말씀을 하지 마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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