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림만의 진주, 웅도 및 조도
웅도 앞바다 갯벌은 가로림만 최고 어장
웅도와 이어지는 조도 노둣길 특히 유명
흔히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을 종종 쓰는데 이는 섬여행을 하다 보면 특히 실감나는 표현이다. 큰 섬들은 섬주민들도 많고 교통이 편리하다 보니 상당수가 육지화∙도시화 된 느낌인데 반해 작은 섬들은 주민 수도 적고 여객선도 자주 다니지않아 섬의 본래 모습이 오롯이 남아 있는 게 보통이다.
충남 서산∙태안 지역의 가로림 만 안에 있는 우도, 분점도 및 웅도,그리고 웅도의 부속섬인 조도 등도 그런 섬들이다. 가로림만(加露林灣)은 태안반도 북부의 만이다. 동쪽은 서산시, 서쪽은 태안군에 속한다. 태안 만대항과 서산 벌천포항을 입구로 하여 둥근 호수처럼 아름답게 육지로 파고 든 만이다.
며칠전, 산악회 산우들과 황금산 등산 후 웅도 및 조도를 다녀왔다. 필자의 경우에는 8년전인 2016.10월에 가로림만의 주요 섬인 대우도, 소우도, 분점도, 웅도 등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물때가 맞지않아 웅도에서 조도를 가보지못해 이번에 마음먹도 다녀왔다.
이들 작은 섬들 중 가로림만 내해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웅도는 행정구역상 서산시 대산읍에 위치하고 있으며, 1.5㎢ 면적에 주민 61가구 128명으로 우도, 분점도에 비해서는 비교적 큰 섬이다. 섬의 모양이 곰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웅도(熊島)라 불리고 있다.
이 섬은 특히 간만의 차에 따라 육지와 연결되기도 하고 섬마을이 되기도 하는 등 신비한 자연환경과 빼어난 해변경관이 자랑이다. 웅도에 들어갈려면 ‘유두교’라고 부르는 연륙교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는 만조 때는 바다에 잠겼다가 간조가 되면 통행이 가능한 잠수교이다. 이 섬 역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셈이다. 유두교의 길이는 500m로 2014년 2월에 보수, 개통됐다. 이 잠수교가 가로림만의 물흐름을 막아 자연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하여 2025년까지는 잠수교를 철거하고 다리를 놓을 예정이라 한다. 현재 유두교는 좌우 난간은 이미 철거된 상태이며 난간없이 간조시에만 임시로 보행 및 차량통행을 허용하고 있다.
웅도는 2016년에는 행정자치부, 한국관광공사 등이 도서지역 관광활성화를 위해 공동으로 추진하는 ‘휴가철 찾아가고 싶은 섬 33곳’ 중 하나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웅도는 지금 어촌체험마을을 운영하는 등 관광객유치에 섬주민들이 큰 힘을 쏟고 있다. 섬 중앙길에는 큰 아치도 세워져 있고 곳곳에 현수막도 걸려 있다. 바지락체험, 쪽대그물체험, 망둥어낚시체험, 낙지잡이 체험 등이 그것이다. 대산초등학교 웅도분교였던 폐교를 어촌마을체험수련관으로 개조하여 단체숙박도 가능하다.
웅도 앞바다 갯벌은 예로부터 가로림만 최고 어장 중 하나로 손 꼽혔다. 주로 4-11월 중 굴, 바지락, 낙지, 망둥어로 이름 값을 높여 왔던 곳이다. 섬에는 유두교 - 남측해변 - 선창 - 옛날초소 - 둥둥바위 - 큰산 소나무 – 마을회관으로 이어지는 둘레길도 잘 조성되어 있다. 데크산책로는 만조시에는 바다 위를 걷는 멋진 바닷길이 된다.
섬 둘레를 따라 설치되어 있는 데크길로 올라섰다. 서걱대는 바람이 갯벌을 훑고 지나간다. 데크를 지나면 물이 빠졌을 때는 직접 갯벌에 내려 설 수 있다. 가로림만이 품고 있는 생명과의 조우는 까맣게 잊고 있던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갯벌 초입에는 제법 큰 물웅덩이도 보인다. 전통적인 고기잡이 어망과 어민들이 작업을 하고 나서 조개류를 씻는 인공둠벙인데 낙지, 게 등을 잡으면 임시로 넣어두는 일종의 자연수조로 쓰이기도 한다. ‘용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용해’는 이곳 뿐 아니라 조도 건너가는 노둣길 입구에서도 볼 수 있다.
웅도는 가로림만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생태자원이 매우 풍부한 곳이다. 여기다 섬 주변 바위들은 선캠브리아시대 규암층으로 12억년의 시간을 간직한 지질학 교과서가 돼 준다.
또 마을 곳곳에 다양한 자연생태 및 수령이 400여 년에 달하는 마을 보호수인 반송 등의 문화역사 자원이 산재해 있어 체험학습 활동의 장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반송은 웅도리의 큰골 서편 야산 기슭의 소나무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약간 외진 곳이라 일부러 찾아가 봐야 볼 수 있다.
선착장 가는 길에 사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김해 김씨 사당이라 한다. 조선 인조 때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려 귀양을 온 섬이 바로 이곳이다.
웅도의 부속섬 조도를 가기 위해 선착장에서 해안으로 내려선다. 간조 때 웅도에서 조도로 건너가는 방법은 두 코스가 있다. 웅도 체험마을에서 해안데크길을 따라 약 1.7km 선착장에 도착한 후 해안둘레길로 둥둥바위에 도착, 이곳에서부터 조도까지 노둣길로 가는 방법과, 웅도 체험마을 입구에서 섬을 가로질러 웅도1길과 2길(어슬렁길이라고도 부름)을 따라 약 2.2km 둥둥바위 도착 후 조도까지 노둣길로 가는 방법이 있다. 노둣길이란 밀물 때는 물에 잠겨 보이지않다가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바다에서 드러나는 갯길이다.
전자는 꽤 긴 해안돌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지루한 점은 있지만 웅도 해안둘레길을 일주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는 반면(체험마을-해안데크길-선착장-해안둘레길-둥둥바위까지 약 1시간 소요), 후자는 약 30분 정도 마을길을 넘어가는 코스이므로 비교적 덜 어렵다는 장점이 있다. 조도 노둣길은 트럭이나 소형 자동차는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있을 정도로 폭도 넓은 편이다. 필자 일행은 조도에 들어갈 때는 전자 코스를, 조도에서 체험마을 입구로 돌아올 때는 후자 코스를 택했다.
특히 조도 들어가는 노둣길은 편도 1.4km, 왕복 2.8km 정도, 노둣길이 곡선으로 되어 있어 경관도 아름답다. 노둣길 입구에 둥둥바위가 있는데 아침에 물안개 끼고 물이 차면 마치 마치 커다란 바위가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노둣길 입구 역시 체험마을 앞처럼 제법 큰 물둠벙이 있다. 물둠벙은 수도꼭지처럼 물을 뺄 수도 있어 잡은 낙지나 굴, 바지락 등을 씻거나 손발 씻기도 편하게 되어 있다.
드디어 조도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노둣길 좌우 넓디넓은 갯벌은 온통 굴밭이다. 마치 하얀 굴껍질을 갯벌에 가득 뿌려놓은 듯 하다. 조도 우측에는 솜섬이라는 조그만 무인도도 보인다. 조도 동쪽(좌측)으로는 대우도와 소우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모두 가로림만의 진주 섬들이다.
조도에 도착하면 간조 때는 이 섬 역시 해안둘레를 한바퀴 돌 수 있다. 시계방향으로 걷다보면 중간에 외딴 집도 만난다. 조도에서 유일한 집이다. 60대의 남자가 혼자 살고 있다. 마침 집주인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함과 연령대를 여쭤보니 말하기를 꺼려하신다. 늘 상주하는 건 아니고 웅도에서 수시로 오간다고 한다.
관광어촌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곳 웅도 및 조도는 다양한 먹거리로도 유명하다. 말린 우럭을 쌀뜨물로 끓여낸 ‘우럭젓국’, 시원한 박속과 낙지를 함께 넣고 끓여낸 ‘박속밀국낙지’, 게장 국물에 묵은 김치를 넣어 끓여 낸 ‘게국지’ 등이 토속별미로 알려져 있다.
조도 해안둘레길을 걸은 후 웅도로 돌아오면서 잠시 생각에 젖어본다. 난 왜 이토록 섬을 좋아할까? 굳이 이유를 따질 필요는 없다. 바다 건너 낮선 땅, 세상 풍파에 시달리다가 섬에 가면 문득 나 혼자임을 깨닫고, 조용히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 그곳은 잠시나마 호젓해질 수 있고, ‘쉼’의 의미를 주는 곳이기도 하다.
조금 거창하게 얘기해본다면 이승과 저승 사이 어딘가 징검다리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안개 자욱한 그곳. 그냥 건너가 보면 이 땅에서는 한번도 보지못한 풍경과 사람들이 있고, 동화처럼 뭔가 꿈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그런 곳이 섬이다.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이며 알베르 까뮈의 스승이기도 한 장 그르니에(Jean Grenier)는 그의 저서 <섬(LES ILES)>에서 쿡선장이 쓴 여러 여행기들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되는 것일까? 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지금, 내 마음도 그렇다. (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