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리(Julia Lee·본명 이미현) 작가의 개인전

입력 2026년07월29일 10시26분 배진권 조회수 145

나의 신세계(My New World)


 

줄리아 리 사진전 ‘나의 신세계’…말의 질주와 자연의 침묵이 건네는 깊은 울림

 

자연을 바라보는 일은 때로 풍경을 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눈앞에 놓인 장면을 넘어, 그 안에서 스스로의 마음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줄리아 리(Julia Lee·본명 이미현) 작가의 개인전 ‘나의 신세계(My New World)’는 바로 그런 감각에서 출발하는 전시다. 전시는 8월 5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아트레온 갤러리 지하 2층에서 열린다.

 

캐나다에서 20여 년을 지낸 줄리아 리 작가는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시작했으며, 귀국 후에도 꾸준한 연구와 작업을 이어오며 자신만의 사진 세계를 다져왔다. 익숙한 장면을 익숙한 방식으로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오래 바라보고 오래 기다리며 자신만의 시선이 닿는 순간을 화면 안에 담아내는 데 집중해 왔다.

 

무엇보다 작가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유명 촬영지에서도 남들이 이미 찍어놓은 장면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같은 장소라도 익숙한 구도와 계절을 비껴가며, 그곳에서 자신만의 프레임과 다른 결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데 더 마음을 쏟는다. 누군가가 이미 정해놓은 ‘좋은 사진’의 기준을 따라가기보다, 같은 풍경 안에서도 스스로의 감각으로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려는 태도가 그의 작업을 지탱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작품은 단연 ‘말(Horse)’ 연작이다. 작가는 6년 넘게 말의 움직임을 카메라에 담아왔고, 초원을 가르며 달리는 말들의 힘과 속도, 자유로운 기운을 인상 깊게 보여준다. 흙먼지가 일고 빛이 번지는 찰나, 눈 덮인 들판을 가르며 달려오는 말들의 발걸음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생의 본능과 자유의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육상수 평론가가 “말이 달리면 카메라가 질주하고, 말이 호흡하면 작가의 심장이 날뛴다”고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역동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말의 질주가 삶의 뜨거운 순간을 보여준다면, 자연 풍경을 담은 작품들은 그 반대편에서 고요와 사색의 시간을 꺼내 보인다. 잔잔한 수면 위에 홀로 선 나무, 물속에 잠긴 숲과 반영, 멈춘 듯 고요한 자연의 표정은 우리를 더 천천히 바라보게 만든다. 말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의 힘을 보여준다면, 풍경은 멈추어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처럼 전시는 움직임과 정적, 힘과 침묵, 바깥의 세계와 안쪽의 감정을 함께 엮어낸다. 줄리아 리의 사진은 눈에 보이는 자연을 담으면서도, 결국 그 장면이 사람의 마음 안에서 어떤 울림으로 남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화려한 풍경의 재현이라기보다, 자연을 통해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시선에 가깝다.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작가의 세심함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네뮬레 화이트 벨벳과 일포드 텍스처 코튼 등 고급 인화 용지를 직접 테스트한 뒤 최종 작업을 선택했고, 관람객이 화면의 디테일을 온전히 볼 수 있도록 무반사 유리도 사용했다. 이러한 선택은 사진 한 장을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오래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장면으로 완성하려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여기에 원정 촬영을 함께 견디는 든든한 조력자도 있다. 작가는 먼 촬영지로 나설 때마다 남편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말한다. 긴 이동을 맡아 운전하고, 한 장면에 오래 머무는 작가의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주는 존재가 있기에, 집요한 탐색과 긴 현장 작업도 가능해진다. 결국 한 장의 사진 뒤에는 작가의 시선뿐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버텨낸 보이지 않는 동행의 힘도 포개져 있다.

 

줄리아 리의 ‘나의 신세계’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장면 속에서도 삶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다. 질주하는 말의 뜨거운 숨결과 고요한 자연의 침묵이 한 공간 안에서 마주하며, 관객에게 서로 다른 감정의 결을 건넨다. 결국 이 전시는 자연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내면을 함께 비추는 자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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