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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게 보내는 늦은 편지 (권곡眷榖) 박정현 오랜 세월을 돌아보니 너는 언제나 내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존재였다. 내가 웃을 때는 멀찍이 바라보다가 내가 쓰러질 때는 등 뒤에서 조용히 밀어 일으키던, 말 없는 동행자였지. 생각해 보면 너도 고단했을 것이다. 나를 이끄는 일도, 나의 선택을 묵묵히 받아 적는 일도, 끝없이 이어진 계절을 견디는 일도. 그래서 이제야 인사를 건넨다. “참 오래 함께했구나.” 나는 너를 몰랐고 너는 나를 모두 알고 있었다지만 그 무심함도 이제는 오래된 농담처럼 느껴진다. 세월이 깊어지니 네가 품고 있던 마지막 몇 장의 종이, 그 위에 적힌 내 남은 길까지 희미하게 읽혀 오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남은 시간은 너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먼저 선을 그어 넣기로. 내 안의 아이를 다시 깨워 하늘도 접어 종이비행기로 날리고, 달빛을 주워 반죽하듯 빚어 우리 둘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어볼 작정이다. 내가 흐르는 공기가 된다면 너도 따라 흩어지면 된다. 서둘러 늙은이 될 필요 없는 나이, 웃음과 주름이 나란히 머무는 시절에는 너 또한 조금은 가벼워져도 괜찮다. 우리가 함께 떠날 우주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처음이니까. 그러니 남은 길은 늙은 아이 둘이 손을 잡고 별빛 사이를 걷는 여행처럼 천천히, 환하게, 자유롭게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