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원 회장, 그는 누구인가?

입력 2025년09월13일 17시56분 박상원 세계한인재단 조회수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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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4세계한인회장대회참석 차 서울에 온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회장님을 반갑게 만났다. 그 이전 중국 조선족동포 행사에서도 우연히 만났다. 박 회장을 처음 뵙게 된 것은 그가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한국을 자주 방문했을 때부터이니 꽤 오랜 세월 교류한 셈이다. 다정하고 온화한 인품을 지니신 분이다. 박 회장이 지난 106일 본소를 방문하여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편집자 주]

 

 

세계한인재단 박상원 회장.

 

Q : 박상원 회장님은 언제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게 되었는지요.

 

박상원 회장: 당시 한국인이 미국으로 이민가게 된 사연은 잘 알다시피 대개 비슷합니다. 새로운 삶을 찾아서, 자식 교육을 위해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로 물설고 낯선 땅으로 이민 간 것처럼 저도 19822월에 잘 살기 위해 미국으로 갔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아시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재미한인독립운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이사장님과 같은 전문가들 뇌리에나 남아 있을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재미한인독립운동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신 분을 대라면 저는 단연 서재필, 박용만, 이승만, 안창호 네 분을 꼽겠습니다.

 

박용만 장군은 군인이 아닌데도 장군이라는 호칭이 붙은 분입니다. 우성 박용만은 190526일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네브라스카 대학교에서 군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한인 최초의 미국 ROTC 출신이며 재학 중에 한인소년병학교을 설립해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박용만 장군은 미국 국민들을 향해 한국은 원래 독립국가로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나라로서, 일본의 침략에 의해 강제 병합된 나라이기 때문에 재미한인들의 독립투쟁운동은 지극히 정의로운 행동이다라는 홍보전에 주력했고 임시정부 격인 가정부 대한인국민회 헌장을 직접 만든 분입니다.

 

따라서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 박사와 사상가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서 국민회 활동에 깊이 관여하기 전에 선구적으로 앞장섰습니다. 1908323일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전명운, 장인환 애국지사가 고종황제의 외교 고문 미국인 스티븐슨 암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구명운동과 독립투쟁을 실행한 분입니다. 대국민 홍보전을 전개하는가 하면 그해 711일에는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애국동지 대표회의를 통해 위태로운 조국을 구하기 위해 당대의 한인 지도자들을 한곳에 모여 방략을 수립했고 한국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기고 형식의 글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용만 장군의 이와 같은 노선은 일본의 압도적인 국력과 재미 일본계사람들의 방해 공작으로 실효성이 떨어지자 이때부터 독립운동의 방향을 틀어 군사학교’ ‘비행학교등을 세워 무력투쟁 방향으로 전환합니다. 한편, 이승만 박사는 동지회(同志會)’192177일에 하와이에서 창립했고 안창호 선생은 흥사단(興士團)’1913513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했습니다.

 

이때부터 재미한인사회 특히 독립운동 단체는 분규에 휩싸이게 됩니다. 이승만 박사는 당시 흔치 않은 박사학위 소지자요, 미남 청년에 달변가이다 보니 이승만 박사 주도의 동지회로 이탈자가 많았고, 국민회는 크게 위축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승만 박사를 하와이로 와서 독립운동을 펼치도록 주선한 분이 제 집안 할아버지 우성 박용만 장군입니다. 신한민보 주필로 한국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기고하고 대동단결을 주창하여 대한독립선언서를 함께 서명한 의형제 이승만 박사와 하와이에서 독립 노선의 갈등으로 깊은 상처와 불미스러운 관계로 추락했습니다.

 

그후 한국 광복과 더불어 이승만 박사가 집권하자 이승만 박사 주변에는 미국에서 박용만의 국민회에 가담했던 인사들은 모국 방문조차 여의치 않았고 이들은 박용만의 이름 석자를 지우는데 혈안이 되었으며 심지어 재미한인독립운동사와 같은 서적의 본국 반출조차 김포공항에서 철저히 제지당했던 것입니다.

 

제가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사무총장으로 봉사하며 집안 할아버지이신 우성 박용만 장군에 대해 많은 업적과 정신을 이해하게 되었고 아울러 내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에 연류되었던 독립운동 가족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집안은 박용만 장군의 일가이고 독립운동에 연류된 이유로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내 아버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으셨습니다.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애국선열 합동 추모 사업을 추진하며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역사와 수많은 애국 지사들의 애환을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저라도 나서서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 나서겠다고 생각해 박용만기념재단을 설립했고 내가 미국으로 이주해온 것은 필연적 운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오케이타임스

https://www.ok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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