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성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통곡'이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분노'다
10여 년 만에 장진성 탈북시인의 시집을 다시 읽어본다.
몇일전 TV프로그램 '이만갑(이제만나러 갑니다)'에서 탈북민들의 입을 통해 '고난의행군' 시절 북한의 참상들이 소개됐기 때문이다.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얘기들이다. 문득 장진성 탈북시인의 시집이 생각났다. 책장에서 그의 시집을 찾아 꺼내본다. 종이는 조금 퇴색했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피눈물의 싯귀들!
2009년 쯤이던가? 난 우연히 탈북시인인 장진성 씨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인사동에서 이동순 시인(영남대 명예교수)의 시집 출판기념회에서였다. 이동순 시인은 장진성 시인의 또 하나의 시집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의 해설을 쓰는 등 장진성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출판기념회가 끝난 후 몇몇은 이동순 시인과 인근카페에서 커피타임을 갖게 됐는데, 그곳에서 장진성 시인을 소개받았다. 그 자리에는 장진성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의 시집해설을 쓴 정호승 시인도 함께 했다. 대화가 어느 정도 무르익어가던 즈음 장진성 시인은 카페 안에 놓여 있는 피아노를 보자 피아노를 한번 쳐보고싶다고 했다. 그의 피아노 연주 실력은 대단했다. 우리 일행은 속으로 무척 놀랐다. 북한에서 피아노를 저 정도 연주할 실력이라면 꽤 상류층 자제였을 텐데 무슨 사연이 있어 탈북을 감행하지않을 수 없었을까?
*장진성 시인의 탈북수기(手記)는 영국출판사 랜덤하우스 발간 Dear Leader(한국어판 '친애하는 지도자에게' 2014.9) 및 인터넷신문 New Daily 등에 자세히 연재된 적이 있음.
장진성은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작가동맹중앙위원회 맹원, 조선노동당 작가로 근무했던 탈북시인이다. 그는 20대 때 김정일과 사진도 함께 찍을 정도로 잘 나갔던 시인이었다고 한다. 북한의 통일전선부(대남공작기관) 산하 101연락소에서 근무하다 2004년 탈북했다. 남한 정착 후 2010년까지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북한 전문 매체 <뉴포커스> 발행인 겸 대표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시를 품고 강을 넘다》, 《친애하는지도자에게》 등이 있다.
두만강을 넘을 때 신분 노출이 우려되는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그는 남한으로 가면 반드시 1994-1999년 불과 4년사이 무려 300만 아사자(餓死者)들이 발생했던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를 폭로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북한에서 메모했던 글들을 품고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그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은 대참사를 오늘도 '고난의 행군'이라고 가볍게 명명하는 그 독재정권을 과연 무슨 말로 저주해야 한단 말인가?
그는 초췌했다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서 있던 그 여인은
그는 벙어리였다
팔리는 딸애와
팔고 있는 모성(母性)을 보며
사람들이 던지는 저주에도
땅바닥만 내려보던 그 여인은
그는 눈물도 없었다
제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고함치며 울음 터지며
딸애가 치마폭에 안길 때도
입술만 파르르 떨고 있던 그 여인은
그는 감사할줄도 몰랐다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 원을 쥐어주자
그 돈을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 원으로
밀가루빵 사 들고 허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장진성 시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 전문
장진성 시인은 시집 머리글에서 " 지금도 꿈마다 생생히 보이는 길가의 시체들, 동냥의 손 내밀던 얼굴 까만 아이들, 형벌이 아니라 교양 목적으로 공개처형하던 총소리들, 그 지옥이 싫어 탈북하는 몸부림까지 범죄가 되는 세상, 그 참상들을 詩로 만든다는 그 자체가 사실 사치이지만 나의 감정은 울분을 터뜨리고 통곡해야만 했다"고 말한다.
시집해설을 쓴 정호승 시인은 "슬프다. 이토록 슬픈 詩集이 어디 있으랴. 아프다. 이토록 아픈 시집이 어디 있으랴. 눈물이 난다. 이토록 눈물 나는 시집이 어디 있으랴. 시집 어디를 펼쳐도 붉은 피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 그 눈물이 끝내는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룬다"고 평한다. 정호승 시인은 이어 "그렇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통곡'이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분노'다. 이것은 시집이 아니라 '고통'과 '절망'과 '비극'이다. 그래도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서 마지막으로 부여잡고 놓지않는 '희망'이다. 이 시집은 탈북시인 장진성 씨 한개인이 쓴 것이 아니다. 이 시집은 고통과 절망 속에 사는 북한의 모든 인민들이 쓴 시집이다. 북한에서의 삶을 더 이상 견디지못한 탈북자들의 아리고 쓰라린,상처투성이의 마음이 저절로 모여 쓴 시집이다. 따라서 이 시집은 인간이 쓴 시집이 아니다. 詩가 쓴 시집이다. 도저히 숨죽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 詩 스스로 인간에게 걸어나와 쓴 눈물의 시집이다"라고 풀이한다.(임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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