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예 가이 간 거 보다 가이 오는 거이 더 많노?” - 한국사진방송 대한민국예술-
  • HOME
  • 즐겨찾기추가
  • 시작페이지로
회사소개 설문조사
모바일보기
회원가입 로그인
2019년07월20일sat
기사최종편집일: 2019-07-20 14:02:28
뉴스홈 > com/contents > 아카데미 > 강좌/촬영
>
2019년02월28일 12시38분
쪽지신고하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우예 가이 간 거 보다 가이 오는 거이 더 많노?”

유명잡지에 무려 10년간 연재.
네이버 밴드 공유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우예 가이 간 거 보다 가이 오는 거이 더 많노?” 유명잡지에 무려 10년간 연재.

 

대학로 혜화역에 예총화랑(예총회관)이 있었다.

그 전시실에서 그룹전을 열었다. 80년대 중반쯤이었을 것 같다. 당시로 봐서는 괴상망측한 만드는 사진들이었다. 수십년이 지나서야 타블로비방아트니 메이킹포토니 미장센포토니 파인 아트니 하는 용어들이 대중화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빌어먹을 사진이었고 사진의 역적을 넘어 원흉(사진계를 망쳐먹을 놈, 미꾸리 한 마리가 온 강물을 흐린다)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심지어는 칼을 품고 찾아온 이도 있었다.

 

덕분에 전시장은 관람객으로 인산인해였다. 부산에서도 오고 제주도에서도 구경 왔다. 당시엔 예총이 이 건물에 있었고 사진협회도 4층에 있어 지하철 입구까지 줄선 관람객들을 보고 협회의 원로들이 리더인 김가중의 함자풀이도 했다던가?

 

사실 그 시절 전시회가 아니면 달리 사진을 공부할 방법도 없던 시절이었고 작은 색다름도 자극을 받던 시대였다. 주병진 쇼와 김가중의 누드촬영교실에서 언급 했드시 마광수교수가 자살하고, 이현세는 만화로, 장정일도 소설로 빵으로 가던 시절보다 훨씬 앞서 있던 시대였다.

 

월간 영상이달희 사장께서 보자 해서 찾아갔다. 신당동 어디라고 기억된다.

선생 글 한번 써 보소첫 마디였다.

때마침 바퀴달린 큰 들것에 인부들이 잡지를 싣고 왔다. 한 트럭도 넘는 분량이었다.

우예 가이 간 거 보다 가이 오는 거이 더 많노?” 사투리가 심한 분이었다.

서점에서 못 팔고 반품되어 들어오는 책들이었다. 갑자기 글 쓰라는 소리가 너무 무서웠다. 단 한 번도 글을 써 본 적도 없고 쓸 생각을 가져 본 적도 없었다. 내 글로 인해 잡지가 더 안 팔리면?

 

막 군대에서 제대하고 할 짓이 없어 신문사 문화센터에서 재미로 몇 주 배운, 사진계의 속성도 제대로 파악 못한 초자에게 글을 쓰라고 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한 달만 써 보겠다고 했다. 당시 그 잡지의 히로인은 고 홍순태 교수님이었다. 그분도 12개월 정도 연재하고 더 이상 못했다고 했다. 글 쓴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었다.

 

이때 쓴 글이 인식론이었다.

 

사진은 인식이다. 자신의 안목과 기술과 감정이 동일 궤도상에 일치되는 것이 곧 사진이다.”

사실 이 대단한 명문장은 브레송의 어록이었다. 그의 출세작인 결정적 순간은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더욱 웃기는 것은 당시 나의 내공은 이 말을 이해조차 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런데 어쩌자고 저 어려운 철학을 글머리에 내었는지?

고로 사진가는 나와 대상에 대하여 최대한의 존경을 기울려야 된다.” 라고 마무리 된다.

참 어렵다 대상을 존경하라니 무슨 지 할애비라로 된단 말인가? 대가들은 말을 어렵게 하여야 되는 것 같은데 정말 엿 같다. 그의 철학이 너무 어려워 대뜸 욕부터 해 대었다.

 

조타 이 글을 쉽게 풀어 놓겠다.

부레송의 인식하라, 화이닝거의 통찰하라, 애덤즈의 결과를 예측하라, 라는 사진론은 결국 다 한통속이었다.

부레송의 결정적 순간회이닝거의 통찰론애덤즈의 결과에측론을 집대성한 ‘Zone system' 은 소위 사진예술계의 세계적인 대박이 난 걸물들이었다. 다 엄청난 돈을 벌 만큼 이 간단한(?) 명저들은 전 세계로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갔고 지금도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 秘書들을 해독하려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월간 영상에 뭐라고 기고를 했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아주 쉽게 풀이하여 담박에 이해할 수 있게 글을 썼고 내가 생각하는 예술론을 강력하게 펼쳐 나갔던 것 같다. 내 주장이 너무 강하여 욕도 많이 먹었고 이단아란 닉네임도 얻었다.

 

뭐 나의 글 때문에 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잡지는 부수가 늘었고 잡지사는 돈도 많이 번 걸로 알고 있다. 이달희 작가(그분도 유명 사진가)님이 돌아가실 때 까지 10년 정도 초대작품과 컬럼을 매달 썼던 걸로 기억된다.

 

장례식 날 사모님께서 내 손을 부여잡고

김 선생이 글을 써야 우리 잡지사가 살아나하시며 간곡히 부탁하셨지만 난 더 이상 글도 작품도 내지 않았고 시대는 급변하여 모든 것이 종이위에서 자그마한 전회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전화기는 알리딘의 마술램프와 동격이다. 이제 이 세상 모든 것이 이 작은 램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 후 오랫동안 퍼포먼스형 사진작업에 매진했다. 해외 누드기행을 비롯하여 국내에서도 지랄발광(동대문DDP 址辣發光)페인팅 퍼포먼스 외 많은 누드작업과 특수 테크닠을 이용한 대규모 조명촬영기획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다.

 

요즈음은 봄철동안 아름다운 미세먼지 도시의 실루엣을 그리다를 시리즈로 촬영하고 있다. 도시의 아침 자욱한 분진 속에 묻힌 도시의 파스펙티브는 시각적으로 좋은 소재이기도 하려니와 도시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미세먼지, 그리고 그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의 휴먼스토리가 다양한 내러티브를 그려 낼 것이라고 본다. 이어서 5월말엔 중국 천산의 인체초원 풍경촬영기행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축적한 작품이 10만 컷이 넘는다. 너무 많아 정리가 안 되어 오히려 슬럼프다. 아니 수십 년 동안 축적한 그 빈티지한 작품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전히 얼마든지 필요로 하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내공을 지니고 있어 향후 파생될 세계가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예술은 이슈다

이것이 나의 철학이다.

 

****

* 당시에 대학로에서 전시했던 작품이다. 원본은 어딘가 쳐밖혀 있을 것 같고 도록을 복사했다.

* 도시의 실루엣.....은 서울도심을 낙산 안산 관악산 남산 대모산 아차산등서 내려다보며 시리즈로 촬영해 보려고 한다.








 

올려 0 내려 0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무통장입금 정보입력 입금자명 입금예정일자
(입금하실 입금자명 + 입금예정일자를 입력하세요)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김가중 (kimgajoong@naver.com) 기자 
이 기자의 다른뉴스보기
강좌/촬영섹션 목록으로
GN=M X F (2019-03-01 16:40:59)
[스터디 클럽] 한국사진방송 책 만들기 완성 프로젝트 시작 (2019-02-28 12:22:53)

작전타임 NUDE.DOT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공지사항 독자투고 기사제보
상호명: 한국사진방송
방송등록번호: 서울특별시 아01089 등록일: 2010.01.08 사업자등록번호: 209-07-84872
발행:김영모 편집:이성녕 대표/청소년보호책임자:김가중 02)763-3650/010-7688-3650 kimgajoong@naver.com
주소:서울 종로구 명륜동 2가4 아남A 상가동1차103호
Copyright(c) 2019 Ver5.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