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전 구입한 남편을 팝니다. 사랑스럽고 아끼던 물건이었으나 이제 낡고 관리비도 많이 들어 쓸모도 없습니다. 걸핏하면 토라지고 치마 꼬리 졸졸 따라다녀 귀찮게 굽니다. 배 불뚝 나오고 머리 숱은 적어지고 술⋅담배 냄새 풀풀 풍기며 손끝 하나 까딱 않고 잔소리만 심하며 밥은 하루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습니다.
아는 지인이 퇴직을 하면서 편안한 노후를 생각했는데 30여년 같이 살아온 아내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고 한다. 눈치 안보고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보며 살다가 갑자기 감시(?) 받고 치다꺼리해야 하는 남편이 곁에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고 성가신 존재이다. 준비해 놓고 간 음식도 챙겨먹지 못하고 라면 끓여 먹거나 배달 시켜 먹는다. 모임에 나가 차라도 한잔 할라치면 과일 칼 어딨냐, 계량기 검침은 어떻게 하느냐, 몇 시에 들어오느냐고 연신 전화질을 해대는 통에 짜증 만발이고, 아직도 남편 치다꺼리하고 사느냐는 친구들의 빈정댐도 부화를 돋운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남편 출근 시키고 나서 친구들끼리 모여서 수다 떨고 쇼핑하는 오랜 전업 주부 생활로 시간을 활용하는 패턴이 수 십년간 확립(?)되어 있는 아내는, 남편 은퇴후에도 쇼핑이나 모임등 전혀 달라질게 없다. 뽀글이 파마하고 선 캡에 장갑 끼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줌마가 된다. 그러나 남편은, 갑작스럽게 바뀐 은퇴 상황에 위축되어 사회 생활이 활발한 아내에 대한 불만이 쌓여 사소한 일에도 마찰이 생기고 다투는 일이 늘어난다. 섭섭한 마음은 과거의 모든 일을 반추하고 문제 삼아 시집이나 처가에 대한 불평불만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오래전의 확인되지 않은 일까지 의심하게 되어 가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거나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남자가 어린애가 되는 시기는 결혼과 은퇴후라고 한다. 은퇴후 남자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박탈(?)되고 자신감이 떨어져 밖에 나가면 외톨이 마냥 뒷길로 슬슬 피하고 두더지 땅 위에 올려놓은 듯 비실비실 집에 들어오기 바쁘고 햇빛이 그렇게 눈부신 줄 처음 안다. 무료한 시간을 집에서 혼자 보내니 재미있게 살아가는 아내가 부럽고 괜한 심술도 생긴다.
살기 바빠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라 취미 생활이나 여가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너무 많은 여유 시간을 TV 시청이나 낮잠으로 소일한다. 한 없는 여유 시간과 할 일 없는 공허함이 그동안 피곤하고 바빠서 지나쳤던 일 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지 마라, 설거지 그때그때 해라, 냉장고 정리 좀 해라 등등 시시콜콜 잔소리로 아내나 아이들에게 기피 대상 1호가 된다. 부부끼리 있어도 대화가 단절되어 어색하고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말꼬리 잡아 싸움하는 것이 다반사다.
국민 소득이 연간 3-4만달러 이상되는 선진국 국민들은 우리들이 하찮게 여기는 나무 자르기 대회나 치즈 굴리기 대회 등에 심취한다. 은퇴후 연금으로 노후 보장이 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것, 가족과 재미 있게 보내는 것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노후가 불안한 한국민들은 치부나 출세를 위하여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여가 생활에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먼 훗날 한국도 소득이 더 높아지면 여가를 즐기며 편안한 노후를 보낼텐데, 우린 너무 일찍 태어난게 유감이다.
아이들은 아내하고 도란도란 얘기도 잘하고 애인 얘기도 하고 옷이나 액세사리 사는 얘기도 나누는데 아빠하고는 대화 뚝이다. 아빠와 남편은 구닥다리고 자기 주장만 하는 고집 불통 외톨이로 소외감과 배신감을 곱씹는다.
아이들 키워놓으니 친구나 애인하고만 어울리고, 남편은 사회생활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성장하는 사이, 아내는 늙고 쪼그라들어 혼자 빈 집만 지킨다는 "빈둥지 중후군"이 인구에 회자되었지만, 여권이 신장된 현대의 남편들은 대접도 못받고 겉돌고 있다. 가족은 있으되 반겨주고 편안한 안식을 주는 가정이 없는 시대이다. 둥지 없이 붉은머리 오목눈이나 휘파람 새 둥지에 탁란을 하는 뻐꾸기와 같이, 가족은 있으되 가정(둥지)이 없는 "뻐꾸기 둥지 증후군"(필자 작명)을 앓고 있다. 일자리서, 가정에서 쫓겨난 남편족들은 공짜 전철에 막걸리 한 잔으로 서글픔을 달래며 부초처럼 산으로 공원으로 흘러 다닌다.
고집 세고 냄새난다고 젊은이들은 상대도 안해주고, 이쁜 여자들에게 호기심이라도 보일라치면 늙은 사람이 주책이라는 시선을 감수해야 하고, 아이들이나 아내도 살갑게 맞아주지 않는다. 한 평생 고생하며 돈 벌어다 줬는데, 평생 가족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이제 돈도 못벌어오니 홀대받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지금 아버지의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돈 버는 기계 노릇도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결혼식 때 혼주 자리 앉는데만 만족하지 않을려면, 이삿짐 차에 제일 먼저 올라타는 애완견 신세가 되지 않을려면, 황혼 이혼을 당해 몇푼 안되는 연금마져 반토막이 되지 않을려면, 아이들과 아내와 항상 소통하고 관심을 보여 점수 따는데 노력하여야 한다. 서양 남자들이 아내에게 잘 하는 것은, 이혼후 자녀 양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지 않을려고, 경제력과 발언권이 커진 우먼 파워에 이혼 당하지 않을려는 치열한 몸부림인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