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의 맛과 향은 여인의 손끝으로부터
녹차의 고장 보성의 회천 아낙네들은 물론 할머니에 이르기 까지 차를 덖지 못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맛과 향 그리고 색깔이 좋은 녹차를 잘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맛과 향이 좋은 녹차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거기에는 농경사회에서 쌀을 생산하여 밥을 짓거나 국을 끓일 때 이용하였던 무쇠 솥이라는 취사도구를 이용하게 된다. 무쇠 솥에 은근하게 불을 지피고 찻잎을 넣어 타지 않게 잘 저어주면 뜨거운 물에 나물을 살짝 데치는 것처럼 찻잎이 숨이 죽어 부들부들하게 된다. 꺼내어 식기 전에 멍석을 펴놓고 두 손으로 힘껏 비비면 찻잎 속에 들어있던 차의 물질(성분)들이 빠져나와 잎에 붙게 된다. 뭉쳐진 찻잎이 붙지 않도록 잘 털어 다시 솥에 넣고 덖기를 대여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지면 수제차가 완성된다.
이렇게 찻잎 안의 조직에서 빠져나온 수분이 은근한 무쇠 솥에서 마르게 되고 이것을 우려내는 게 녹차다.
[사진 - 회천의 매봉산 밑에서 자생하고 있는 차나무 군락지]
덖는 방법과 회수에 따라 녹차의 향과 맛 그리고 색깔이 달라질 수 있고 질 좋은 녹차를 만드는 관건이 되기도 한다.
덖는다는 개념은 은근한 불에서 찻잎이 타지 않도록 잘 저어주는 것, 볶는다는 의미는 덖을 때보다 더 높은 열로 가열하여 타지 않은 상태로 정의할 수 있는데 전자의 방법으로 만든 차를 녹차의 제다과정이고 후자의 방법으로 만든 차를 홍차라고 부른다.
[사진 - 무쇠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은근한 불에 찻잎을 덖고 있는 할머니]
은근한 불로 덖은 찻잎을 70~80도 정도의 물에 넣고 우려내면 연한 녹색을 띤 푸르스름한 빛이 나고 찻잎의 형태가 그대로 살아나지만 찻잎을 센 불에 볶으면 우러난 찻물은 붉은색을 띠고 찻잎의 원래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같이 녹차와 홍차는 같은 찻잎으로 만들어지나 덖고, 볶는 과정에 따라 향과 맛, 그리고 우려낸 차의 색깔이 달라진다. 또 찻물의 뜨겁기에 따라 향과 색깔이 달라지므로 녹차를 바로 마시려면 끓인 물을 섭씨70~80도 정도로 식혀 차를 넣고 우려내는 것이 녹차의 향과 맛을 모두 마시는 요령이라 할 것이다.
[사진 - '보성다향제 녹차대축제'의 찻잎 따기] 보성군 제공
찻잎을 따는 시기는 자생지와 재배지에 따라 며칠씩 달라질 수 있으나 곡우(穀雨)를 기준하여 곡우(穀雨)전에 따서 만든 차를 우전차(雨前茶), 곡우(穀雨)에 따 만든 차를 곡우차(穀雨茶)라 부른다. 이 시기에 딴 녹차가 맛과 향이 가장 좋으나 생산량과 인건비를 감안한다면 그렇게 높은 가격은 아니어서 선물용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다.
찻잎을 따는 시간에 대해 초의선사(草衣禪師)는 ‘비가오거나 흐린 날에 따면 제 맛을 낼 수 없고 맑은 날 오전에 따 즉시 덖어야 하며 찻잎을 쌓아둬서 열이 나지 않도록 한다. 또 시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고 그의 저서 ‘동다송(東茶頌)’에서 말하고 있다.
[사진 - 가루차]
필자는 해마다 차나무 잎이 피어나는 5월이면 보성(회천)으로 내려간다. 그곳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조그마한 집이 있고 선산이 있다. 선산에는 선조들이 모셔져 있고 가까운 곳에 차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 자생녹차를 얻는 데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찻잎을 따고 덖어서 ‘죽천차(竹泉茶)’를 만들어 낸다.
찻잎을 넉넉하게 따 ‘죽천차(竹泉茶)’를 만들어 이사람 저사람에게 주는 즐거움은 녹차의 향보다 더 진하게 돌아와서 좋았다. 지금까지 수제 차의 제다과정을 살펴봤다.
[사진 - 덖어서 말리는 과정]- 백록다원
그렇다면 현대화된 기계에 의한 차의 제다방법과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회천면 봉강리(봉서동)의 '백록다원(대표 백종우)의 제다공장과 보성군의 보도 자료에 의하면 증열, 조유, 비빔, 중유, 정유, 건조의 여섯 단계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제다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증열 – 보일러로 뜨거운 열을 찻잎에 가열하여 숨을 죽인다.
둘째, 조유 - 데쳐진 찻잎을 엉키지 않도록 잘 섞어준다.
셋째, 비빔 - 찻잎을 뭉개서 내부의 물질을 찻잎 밖으로 터져 나오도록 비비는 작업.
넷째, 중유 - 찻잎의 수분을 열풍으로 건조시키는 온도는 섭씨 34~36도로 유지하여 준다.
다섯째, 정유 - 찻잎의 수분을 건조시키면서 찻잎에 힘을 가해 내부의 물질을 모두 밖으로 빼내는 것으로 찻잎이 가늘게 말리도록 하는 작업.
여섯째, 건조– 정유기를 통과한 찻잎을 건조시키는 과정으로 섭씨 80~90도의 높은 열풍으로 제품 완성된다.
[사진 - 덖은 찻잎이 원통 안에서 회전하면서 마르게 된다] - 백록다원
이와 같이 기계에 의한 녹차의 생산과정은 손으로 덖어내는 수제녹차의 제다과정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어 맛과 향이 좋은 녹차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수제 차의 제다과정을 잘 적용시켜 제작된 제다기계는 무쇠 솥을 이용한 수제 차의 질에 떨어지지 않도록 연구 개발하여 질 좋은 ‘보성녹차’를 생산하고 있다.
註 ; ‘죽천차(竹泉茶)’의 죽천(竹泉)은 필자의 호
- 계 속 -
1. 보성군
2. 동다송(東茶頌) - 草衣禪師
3. 촬영협조 – 백록다원(대표 백종우)
4. 초의 - 한승원 지음
